[주주시론] 정치인이 주도하는 전경련의 부활

'윤 캠프' 출신 정치인이 전면에서 총지휘
반성문과 윤리강령 몇 줄로는 턱없이 부족
근본적 대책 마련한 후 삼성 재가입 논의하길

주주시론 승인 2023.08.17 16:45 | 최종 수정 2023.08.17 16:46 의견 0

삼성그룹이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복귀 여부를 타진 중이다.

2016년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 이후 7년 만이다. 당시 전경련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자금을 기업들에 요청한 사실 등이 드러나자 삼성을 비롯한 4대 그룹은 전경련에서 잇따라 탈퇴한 바 있다.

전경련의 부활은 윤석열 정부 초기부터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 시절 동안 대한상공회의소에 재계 맏형 자리를 넘겨준 채 간판만 남은 상태였다.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 <사진=전국경제인연합회 제공>

하지만 윤 대통령이 취임과 함께 전경련에 손을 내밀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올해 2월 윤석열 대선 캠프 및 인수위 출신인 김병준 전 장관이 전경련 회장 직무 대행에 선임됐다.

올 4월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 때는 우리 기업 인사들이 경제사절단 형태로 총출동 했는데 이 역시 전경련이 주도했다.

결정적 장면은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4대 그룹 총수가 참석한 것이다. 전경련과 일본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이 주최한 행사다.

이 자리를 통해 전경련은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 창설을 주도했다. 현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을 제3자 변제방식으로 풀겠다고 한 것에 대해 적극 화답한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몰두하는 한국 정부로서는 이 기금에 대기업들이 참여하기를 고대하고 있다. 4대 그룹이 전경련 재가입을 적극 검토하는 이유기도 하다.

공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로 넘어갔다. 내부에서도 찬반이 치열하게 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16일 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못 한 채 18일 다시 회의를 열기로 했다.

전문가들은 전경련의 필요성 자체는 부인하지 않는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한상의는 지역별로 나눠진 국내용 단체인 반면 전경련은 한국을 대표하는 위상이 있다 보니 부활 얘기가 나오는 것 같다"며 "활동을 지켜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희망섞인 기대를 내비쳤다.

일본과의 외교 관계 해결을 위해 주요 그룹으로부터 기금을 걷는 것도 딱히 안 될 것은 없다는 평가도 있다.

삼성의 지배구조에 비판적인 모 교수 조차 "미래기금을 만들려면 기업들에게 각출하는 방식 외에는 현재로선 방법이 없지 않은가"라며 "반성문 쓰고 안전장치를 만들면 삼성이 전경련에 다시 가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만 하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당시에는 암암리에 기금을 모집해 문제가 됐지만 공식적이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기금을 형성한다면, 국익 차원이나 기업 차원에서도 크게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설명이다.

발언하는 이찬희 신임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사진=삼성 준법감시위 제공>

그럼에도 여전히 전경련의 부활을 마뜩지 않게 보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들은 전경련이 새출발 하기 위해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과감하게 끊는 것이 선결조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전경련의 부활을 김병준 회장 대행이 주도한 만큼 앞으로도 정치권이 기업에 입김을 넣는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도 충분히 열려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반성문과 윤리강령 몇 줄이 기업 경영진을 정치권의 호통으로부터 과연 지켜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룹 총수건 경영진이건 또 다시 줄줄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된다면 기업에게도, 주주에게도 또 한 번 악몽이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도 낭비 그 자체다.

삼성 준법위가 무엇이 삼성그룹과 주주들을 위한 선택인지 심도 있게 재고할 필요가 있다.

오는 22일 전경련은 이사회를 열고 단체명을 한국경제인협회로 바꾸고 새 수장으로 류진 풍산 회장을 선임할 예정이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우리사회가 여전히 정상적이지 못한 상태라는 방증"이라며 "전경련과 같이 대기업 집단을 대표하는 단체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정치권 입김에 휘둘리면 정경유착은 물 건너 간 것 아니겠는가"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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