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노태우의 통치자금과 검찰총장 尹

檢, 용처 불분명한 영수증으로 수백억을 임의 사용
윤 대통령, 총장 당시 매월 4억원씩 현금 빼다 써
침묵하는 민주당...특활비 앞에선 與도 野도 한배

주주시론 승인 2023.07.12 17:47 | 최종 수정 2023.07.13 10:32 의견 0

"기업인들로부터 성금으로 받아 조성된 이 자금은 저의 책임 아래 대부분 정당운영비 등 정치활동에 사용됐다. 또 일부는 그늘진 곳을 보살피거나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을 격려하는데 보태기도 했다"

5년의 재임기간 중 5000억원의 통치자금을 조성한 노태우 전 대통령. 그는 자신의 비자금 문제가 불거진 1995년 10월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당시 '통치자금'이란 단어의 등장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아마도 저 거액의 돈을 사적으로 빼돌린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해 꺼내든 단어로 짐작한다. 적어도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들어간 자금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당시 국민들은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한다는 이유로 무려 5000억원의 돈을 쌈짓돈으로 사용한 것 못지 않게, 어쩔 수 없었다는 식으로 치부하는 모습을 보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2021년 3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초임 검사 시절을 보낸 대구고·지검을 찾아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사진=검찰청 제공]

그로부터 30년, 이번에는 검찰조직이 특수활동비(특활비)란 이름으로 국가 예산을 임의로 사용했음이 드러났다.

물론 법적 근거는 있다. 특활비는 기밀유지가 필요한 외교, 안보, 정보, 수사 등의 업무에 지출되는 예산으로 영수증 제출이나 사용처 공개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은 기밀 수사라는 원래의 목적과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나눠 가진 것으로 보인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 ‘세금도둑잡아라’ 등에 따르면 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사용한 특활비 292억원 중 156억원이 이렇게 사용됐다. 심지어 나머지 136억원은 검찰총장이 수시로 빼다 썼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검찰총장 재직 때 매달 평균 4억여원의 특활비를 받았으며 서울중앙지검장으로 2년여 재직하며 38억원이 넘는 특활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 억원의 돈이 지급되면서 증빙 서류는 용처가 불분명한 영수증 1장뿐인 경우가 허다했다.

명분만 기밀수사이지 회식비와 격려비로 펑펑 기분을 냈음을 국민들은 으레 짐작한다.

하지만 일반 기업에서 회사원이, 아니 최고경영자라도 이런 식으로 현금을 증빙 없이 빼다 썼으면 최소 해고사유고 업무상 횡령죄까지 물을 수 있다.

실제 윤석열 검사팀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의 특활비 사용을 수사해 결국 죄를 물은 경험을 갖고있다.

물론 양자가 완전히 똑같은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특활비를 엉뚱한 용도로 사용한 것과 용도를 밝히지 않고 사용하는 것, 그 둘 사이에 과연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검찰이 정말 떳떳하다면, 수백억원의 특활비가 기밀수사에 사용됐음을 소상히 밝히면 된다.

그러나 검찰이 이번에 공개한 자료는 주요 항목들을 모두 블라인드 처리했다.

‘기밀을 요하는 직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부분을 제외하고 공개하도록 한 법원의 결정에 따른 것’이란 변명으로 일관하기에는 증거인멸의 혐의가 너무도 짙다.

30년 전 '통치자금'의 논리처럼, '특활비를 사적으로 쓴 것은 아니다'라는 면죄부를 스스로에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어디 검찰뿐인가. 문재인 청와대 역시 특활비는 물론 김정숙 여사의 품위 유지를 위한 옷값 등 의전 비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판결에 불복, 항소심을 이어가고 있다.

검찰 비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야당이 이번 검찰의 특활비 사태에 침묵하고 있는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니기를 바란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특활비 앞에서는 뻔뻔해지는 모습을 보며, 국민 눈에는 특활비가 특수활동비가 아니라 특권층활동비로 비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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