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부정선거와 연금의 침묵

주주시론 승인 2023.06.01 16:32 | 최종 수정 2023.06.02 13:29 의견 0

지난 3월 한 코스피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 위임을 받지 않은 물량에 대해 한 자산운용사가 의결권을 잘못 행사한 사건이 있었다.

이른바 KISCO홀딩스 사태다.

이 사건은 국민연금의 돈을 대신 운용하는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이 회사가 '일임 운용'하는 국민연금의 KISCO홀딩스 주식 의결권을 '위탁 운용' 형태로 행사해 발생했다.

위탁은 운용사가 주식 소유자에게 별도의 위임을 받지 않고 운용사 이름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일임의 경우 운용사는 주식 소유자에게 의결권을 따로 위임받아야 한다.

3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노동시민사회단과 더불어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의 공동주최로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진단과 대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김나경 기자)

연금은 보유하고 있는 상장주식에 대해 보유 지분율이 1000분의 10 이상이거나, 보유 비중이 국내 주식 전체 대비 1000분의 5 이상인 경우 의결권을 행사한다.

따라서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은 연금으로부터 위임을 받지 못 한 이상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번 주총에서 그렇게 잘못 행사된 의결권이 2만4507표다.

공교롭게도 회사 경영진이 추천한 김월기 우송세무회계 대표는 소액주주가 추천한 심혜섭 변호사보다 2만3696표를 더 받았다. 이스트스프링의 투표 오류가 아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문제는 KISCO홀딩스 경영진이 스스로 이 문제를 뒤집지 않으면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달 22일 감사위원 후보였던 심 변호사가 '주주총회결의 취소의 소'를 제기했고 국민연금도 24일 같은 법원에 감사위원 선임 결의를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청구했다.

하지만 본안 판단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 그 사이 감사위원 임기가 그대로 끝날 수도 있다.

법원에 의해 신속하게 주총결의가 취소된다 하더라도 바로 소액주주 측 후보가 감사위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다시 임시주주총회를 열어야 할지 모른다. 소액주주 표를 모으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소액주주 측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KISCO 홀딩스 경영진이 정정공시를 내는 것만이 오류를 바로잡는 길이다.

아쉬운 것은 연금의 침묵이다. 사건 발생 두 달이 지나도록 입을 다물다 뒤늦게 취소소송을 제기하는데 그쳤다. 사실상 경영진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물론 연금 입장에서는 전체 운용 규모에서 KISCO홀딩스가 차자하는 비중이 워낙 미미해, 소극적일 수 있다.

하지만 연금은 그 동안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 투자 기업의 가치를 제고할 것이라고 수 차례 밝혀 왔다. 이른바 스튜어드십 코드다.

그럼에도 실상은 초라하다. 지난해 국민연금이 반대 의결권을 던진 주주총회 안건 803건 중에서 실제 부결된 안건은 10건에 그쳤다. 반대 의결권을 관철한 비율로 따지면 1.24%에 불과했다. 주총에서 거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쯤되면 어차피 통과될 사안에 대해서만 '반대'를 표명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덩치에 걸맞지 않은 '종이호랑이'라는 평가가 제기되는 이유다. "연금은 차라리 행동주의 펀드에 위탁하라"는 조언까지 나왔다.

이번 KISCO 홀딩스 사태와 관련해서도 연금은 보다 적극적인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 부정선거가 발생했는데 국가기관이 내 책임이 아니라고 손 놓고 있으면 곤란하다.

KISCO 홀딩스 경영진에게 사태를 바로잡도록 압박하고 문제가 된 자산운용사에 대해서도 엄격히 제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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