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칼럼] 주주의 관점에서 본 SVB 파산의 진짜 이유

경영진의 임무는 주당 자기자본 가치를 잘 보존하는 것
예금=은행 부채...자본 대비 훨씬 커 위험관리가 중요
만기보유증권 비중 압도적...SVB, 자금인출 조짐에 결국
1달러라도 파는 순간 취득원가→시가평가...사면초가

주주칼럼 승인 2023.05.26 16:08 | 최종 수정 2023.06.02 11:45 의견 0

은행업의 본질과 SVB 파산 사태 이해하기 ①

기업의 자기자본의 실제 가치(내재가치)를 추정하는 것이 투자의 핵심이다. 추정한 자기자본 가치가 시장가치(시가총액)보다 높으면 주식을 매수하고, 그 반대면 매도하는 것이 소위 가치투자 전략이며, 사실 상 이는 모든 투자에 통용되는 방식이다.

투자자가 자기자본의 실제 가치와 시장가치의 괴리를 찾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기업의 경영진의 임무는 사업을 잘 해 기업의 주당 자기자본 가치를 꾸준히 늘리는 것이다. 당연히 최악의 경영진은 자기자본 가치를 감소시키는 경영진이며 최악의 경우 자기자본 가치가 0이 되면 회사는 파산한다.

◆ 경영진의 임무는 주당 자기자본 가치를 잘 보존하는 것

이러한 경영진의 임무가 특히 중요한 업종이 은행업이다. 은행업은 이자를 주고 돈을 빌려와 이자를 조금 더 받고 돈을 빌려줘서 수익을 창출하는 업이기 때문에, 빌려오는 돈(예금)과 빌려주는 돈(대출)의 규모를 키우거나 이자의 차이(예대마진)를 벌리는 것이 수익을 늘리는 방법이다. 경쟁이 있으므로 예대마진을 크게 늘리긴 힘들고 결국 예금과 대출의 규모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예금은 은행 입장에서는 갚아야 될 돈이므로 부채이고, 대출은 조달된 예금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자산이다. 따라서 대출자산에서 예금부채를 뺀 값이 은행의 자기자본이 된다.

은행의 자기자본은 자산과 부채의 규모에 비해 매우 작기 때문에 자산가치의 조그만 변화에도 크게 영향 받는다. 바꿔 말하면 은행은 자기자본 대비 부채의 규모가 훨씬 큰 고(高)레버리지 사업이기 때문에 은행의 경영진에게는 자기자본 가치를 키우는 임무와 동시에 자기자본 가치를 잘 보존하는 위험 관리가 핵심 임무다.

은행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을 넘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위험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많은 은행들이 파산했던 여러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은행을 감독하는 각 국가 및 글로벌 규제기구는 은행의 자기자본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가지 규제들을 두게 되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올해 3월 자산 규모 미국 16위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SVB의 파산은 은행 경영진의 위험관리 업무가 왜 중요한지, 규제 당국의 규제 정책 기조가 은행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은행의 위험관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사례다.

이에 SVB 파산의 원인을 정리함으로써 자기자본(주주가치)을 보호하는 경영진의 임무에 대한 시사점을 찾기로 한다.

◆ 예금은 은행의 부채...자본 대비 훨씬 커 위험관리가 중요

SVB는 은행의 이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스타트업 및 테크 기업들이 모여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서 주 영업을 하는 은행이다. 따라서 이 은행의 주요 고객은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이나 테크 기업들이다.

스타트업, 테크 붐에 힘입어, 2019년말 약 618억달러이던 SVB의 예금(deposits) 규모는 2022년말에는 1731억달러까지 약 3배 규모로 급격히 증가했다.

SVB는 급증한 예금과 자기자본으로 대출보다 더 큰 규모로 금융상품에 투자했는데, 2022년말 기준 약 43% 가량이 주택저당증권(MBS)과 같은 만기보유증권(Held-To-Maturity(HTM) securities), 34%가 순대출(Net loans), 약 12% 가량이 매도가능증권(Available-For-Sale(AFS) securities)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은행들 대비 만기보유증권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이 특징이다.

만기보유증권은 은행의 재무상태표에 취득원가로 기록되며, 매도가능증권은 취득원가와 시가의 차이가 기타포괄손익누계액(Accumulated Other Comprehensive Income; AOCI)라는 항목으로 자본에 가감된다.

즉, 만기보유증권은 은행이 만기까지 팔지 않는 자산으로서 시가의 변동이 자기자본에 반영되지 않으며, 매도가능증권은 시가의 변동에 따라 은행의 자기자본이 변한다.

2022년에 미국 연준(Federal Reserve; Fed)이 금리를 인상함에 따라 SVB가 보유하고 있던 만기보유증권의 실질 가치가 크게 감소하여, 이러한 가치 감소를 반영할 경우 SVB의 보통주 자기자본은 마이너스, 즉 자본잠식인 상황이 되었다.

물론 만기보유증권은 시가평가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자본의 장부가치는 감소하지 않았지만, 만기보유증권의 실제 시장가치를 반영할 경우 자본잠식 상황이 된 것이다.

자본가치가 마이너스라는 이야기는 주주들의 몫은 이미 사라졌고 채권자들(예금주들)의 몫도 손상이 되었다는 의미다. 경영진의 임무는 물론 장부상의 자본가치도 보호하고 증가시켜야 하지만, 자본의 시장가치도 당연히 보호하고 늘려야 하는 것이다.

SVB와 같은 상장사의 자본의 시장가치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기업의 파산, 시가총액이 0이 된다는 의미다.

그리고 결국 그 일은 현실이 되어 SVB는 파산했고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뱅크런에 따른 유동성 이슈로 파산한 것이지만, 그 기저에는 자기자본 가치를 보호하지 못한 경영진의 자산배분 실패가 있었다.

◆ 만기보유증권 비중이 압도적...SVB, 자금인출 조짐에 결국

다시 파산 원인으로 돌아가 보자. 급격한 금리 인상이 SVB가 보유한 증권의 가치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저금리 상황에서 넘쳐나는 유동성으로 인해 벤처캐피탈(VC) 등에게 많은 투자를 받았던 스타트업 기업들이 고금리 환경이 되면서 더 이상 투자는 받지 못하는데 사업자금은 지속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상황에서 예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

2022년 중반 약 2,000억달러에 달하던 SVB의 예금 규모는 2023년 1분기에 약 1,700억달러로 15%나 감소했다. 지속적인 예금 인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출 및 투자자산을 팔든지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그러나 SVB의 경우 자산 중 만기보유증권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유동성 자산인 현금 및 매도가능증권의 비중은 만일의 뱅크런 사태에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규모였다. 이 은행의 자본가치가 마이너스이며 따라서 실질적인 파산 상태라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뱅크런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다.

물론 만기보유증권을 무조건 만기까지 보유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기보유증권도 시장에 내다 팔아서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만기보유증권을 1달러라도 파는 순간 만기보유증권 포트폴리오 전체를 더 이상 만기보유증권으로 분류할 수 없게 되며 시장가치(mark-to-market)로 조정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만기보유증권의 가치가 약 120억달러 감소하여 이 은행의 보통주 자기자본의 장부가치가 즉시 마이너스가 되기 때문에 만기보유증권을 팔 수는 없었다.

◆ 1달러라도 파는 순간 취득원가→시가평가...사면초가

SVB의 경영진은 2023년 3월 8일에 12.5억달러의 유상증자, 제너럴 아틀란틱(General Atlantic)을 대상으로 한 5억달러의 3자배정 증자, 5억달러의 우선주 증자를 통한 자본확충 방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동시에 210억달러의 매도가능증권을 매각함으로써 18억달러의 세후손실을 확정지었다.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경영진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SVB가 대규모 손실을 확정지으면서까지 보유하고 있는 매도가능증권 대부분을 매각하였고 추가적으로 대규모 증자까지 한다는 소식이 기폭제가 되면서 오히려 다음날인 3월 9일에 420억달러의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했다.

이는 은행 전체 자산의 약 20% 규모로서 은행의 유동성자산을 초과하는 규모였다. 결국 3월 10일에 SVB의 주가는 폭락했으며 주식거래가 정지되었다. 그리고 SVB는 공식적으로 파산했다.

이 과정에서 뱅크런을 촉발시킨 또다른 요인은 이 은행의 예금 대부분(96%)이 미국연방예금보험공사(FDIC)로부터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금이라는 사실이었다. 이는 은행의 예금 고객 대부분이 개인이 아닌 스타트업, 테크, 생명과학 등의 기업들이었기 때문이다.

지역적으로 몰려 있고 작은 소식도 즉각적으로 전파되는 비슷한 성격의 초기 기업들이 예금주였던 점도 뱅크런을 촉발시킨 또다른 요소였다. 다만 이는 뱅크런이 쉽게 일어날 수 있었던 요인일 뿐이며, 더욱 중요한 뱅크런의 실제 원인은 결국 자기자본 가치를 보전하지 못한 경영진의 위험관리 실패에 있었다.

만기보유증권 규모를 너무 크게 가져간 경영진의 결정 외에도 위험관리를 망각한 경영진의 결정적인 판단 착오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규제 기조 변화가 은행 경영진의 위험관리 및 자산배분 의사결정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다음편에서 알아보기로 한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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