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1주 10표라니' 과연 누굴 위한 것일까

복수의결권 국회 문턱 넘자마자 상장사 확대론 등장
지배주주에게 특혜를 줄수록 경영 혁신의 기회 사라져

주주시론 승인 2023.05.10 17:24 | 최종 수정 2023.05.11 18:29 의견 0

벤처기업 창업자가 보유한 주식에 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복수의결권 제도가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루 뒤 한 경제신문이 서둘러 사설을 썼다. 복수의결권 제도를 벤처기업 뿐만 아니라 상장사 전체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이 사설을 거론하며 "개정안의 입법 취지를 아주 잘 드러냈다"고 씁쓸해 했다.

복수의결권 도입을 주장해 온 쪽에서는 그동안 이 법안의 필요성을 벤처업계 특수성에 기초해 주장해 왔다.

벤처기업 창업자는 통상 아이디어와 열정 그리고 기술력으로 승부하다보니 자금이 당연히 넉넉하지 못하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수록 외부 자본을 조달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그 과정에서 본인의 지분 비율 희석으로 경영권이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1주 10표의 복수의결권이란 것이다.

하지만 금융투자업계는 의심을 거두지 않아 왔다. 결국에는 이미 상장한 기업들, 특히나 재벌기업 총수의 경영권을 보호하는 것으로 확대될 것이란 얘기다. 위 사설이 이러한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 셈이다.

1주 1표의 원칙이 물론 헌법상 가치는 아니다. 예외를 두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예외를 위해서는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복수의결권이 없어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지 못했다는 주장에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이 동의할지 모르겠다.

초기 투자를 담당하고 있는 한 VC 관계자는 "왜 창업자의 이익을 위해 우리와 같은 초기 투자자가 피해를 봐야 하는지 의문"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런 예외적 조항이 마련될수록 초기 투자자는 투자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투자 유치는 더욱 어려워진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복수의결권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방어권 차원이란 주장도 현실과 동떨어진다.

우리 기업 역사에서 경영 활동이 정상적인 기업을 대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이 시도된 경우를 떠올리기 힘들다.

최근 국내 자본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주주행동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목표로 삼았던 기업들을 보면, 대부분 '주인없는 회사'이거나 오너의 전횡이 팽배한 경우였다.

그랬기 때문에 일반주주들 역시 경영진보다 행동주의 펀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기업이 망하기를 바라는 주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현행법상 창업자가 굳이 지분율 희석을 원하지 않는다면 보통주가 아닌 우선주를 발행하면 된다. 의결권도 없는 우선주에 어떤 기관이 투자하겠냐고 하는데 같은 논리로 10분의 1의 가치만 가지는 주식에 과연 누가 투자할 것인가.

이런 이유 때문에 이번 개정안의 실제 활용이 떨어질 것이란 시각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 정치인들이 모처럼 하나가 돼 이번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국회의원들은 아마도 가상의 거대한 글로벌 큰손에게 우리 기업들이 잡아먹히는 상상을 하면서 표를 던졌을지 모른다. 그 진심을 꼭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항상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시장원리에 반하는 정부 정책의 결과들이 그러하다.

서민 주거난을 막기 위해 시행한 임대차 3법은 전세가를 치솟게 만들었다.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 감소로 서민 생활에 타격을 줬다.

복수의결권 제도가 상장사까지 확대될 경우 실제로는 우리 기업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주주 일가에게 특혜를 주는 결정이 될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 한 관계자는 "설마 하던 일들이 늘상 지배주주에게 유리한 결과로 매듭이 지어지는 것을 보다보니 우리로선 이런 피해의식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과도한 보호장치는 경쟁의 후퇴를 가져오고 혁신을 가로막는다. 정치권의 우국충정이 우리 기업과 경영진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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