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핀란드化와 한반도의 미래

주주시론 승인 2023.04.26 11:35 | 최종 수정 2023.04.28 10:20 의견 0

우리에겐 사우나 좋아하는 추운 지방의 복지국가 정도로 알려진 핀란드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 오랫동안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스탈린의 소련을 상대로 처절하고도 기나긴 '겨울전쟁'을 치렀고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핀란드군의 대활약에도 불구하고 인구 500만명도 안되던 약소국 핀란드는 인구 2억의 강대국 소련에게 무릎을 꿇었다.

전쟁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핀란드는 친소에 가까운 중립을 선언함으로써 자유주의 체제의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나 헝가리와 같은 위성국가가 되는 길 역시 모면할 수 있었다.

1947년 2월 당시 핀란드 대통령은 "소련에 대한 어떤 외부의 공격이 있을 때 핀란드는 소련 동지들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내정에서조차 소련의 지대한 간섭을 받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소련의 동정이 핀란드 공중파에 매일같이 보도됐다. 소련 비판은 금기시됐다. 소련을 비판하는 미디어는 검열을 받았다. 공산주의 초강대국인 소련과 공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이를 두고 서방에서는 경멸조로 ‘핀란드화(Finlandization: 강대국에 의해 주권을 제약받고 사는 것을 숙명으로 여겨 저항 대신 순응하는 외교정책)’라고 말한다.

냉전 시대 머나먼 나라의 아픈 역사를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일어난 태풍이 대만해협에 상륙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은 현재 여러 국내외 문제에 봉착한 상태다. 성장이 둔화되면 불안감은 팽창정책으로 이어진다. 이를 미국 한 기자는 '몰락하는 강대국의 위험'이라고 지칭했다.

시진핑은 덩샤오핑의 '3연임 금지' 규정을 깨고 스스로 황제 지위에 올랐다. 그의 독주를 중국 인민들 역시 마냥 지켜보고 있지 만은 않을 것이다. 시진핑이 대만 침공이라는 무리수를 꺼내 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이유다.

최근 미중의 안보적 대립이 강화되면서 과거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으로 표현되는 균형외교의 수명이 끝나고 있다. 이로 인해 한반도 안보의 구조적 제약 역시 커지고 있다. 즉, 우리의 선택지가 매우 좁아졌다.

이런 와중에 일각에서 중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한가로운 주장을 내놓고 있다. 심지어는 중국이 패권 국가에 오를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중국의 대만 복속이 현실화되는 순간, 아시아 전체는 중국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된다. 미국의 군사동맹국으로 지내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다면 우리 한반도는 냉전 시대 소련의 위성국가 처지에 몰리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행여 운이 좋아도 '핀란드화'라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1960년대 대약진 운동을 통해 4500만명의 자국민을 아사시켰다. 문화대혁명 10년 동안에는 수천만명이 처형당했다.

그럼에도 굳건한 것이 중국 공산당이다. 1당 독재국가의 힘이다. 권위적인 초강대국 밑에서 기생하는 한반도의 운명이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은 중국과 ‘헤어질 결심’을 굳힌 듯 보인다. 피해는 막대하겠지만 미국이라는 해양세력과 중국이라는 대륙세력의 양대 강국 사이에 끼인 우리의 운명이다.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혜롭게 준비해야 한다.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에 기대를 거는 것도 이런 대목이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력과 협상력이 이번 방미 기간 중 최대한 발휘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우리의 '결심'이 굳건할수록 상대방 중국의 움직임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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