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최정우 회장이 쏘아올린 작은 공 '탈국민기업'

사내 홍보자료 배포..."포스코 더이상 국민기업이 아니다"
지역사회 및 포스코 원로회 반발에 일단 수면 아래로
"굳이 필요한 메시지인가" vs "외부 압력 차단 필요해"

박소연 승인 2022.06.03 09:48 | 최종 수정 2022.06.03 15:48 의견 0

포스코홀딩스가 국민기업을 탈피해야 한다는 홍보자료를 직원들에게 배포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역 시민단체 및 포스코 원로회 등의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최정우 회장의 주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홀딩스는 지난달 '포스코그룹의 정체성'이란 사내 메일을 임직원들에게 배포했다.

​​포스코홀딩스는 "포스코는 2000년 10월 4일 산업은행이 마지막까지 보유한 2.4%의 지분을 매각함으로써 완전한 민간기업이 됐다. 민영화가 완료된 지 20년 이상 경과됐음에도 여전히 국민기업이란 모호한 개념으로 회사 정체성을 왜곡하고 다른 민간기업 대비 과도한 책임과 부담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영권을 행사하는 지배주주가 없다'라거나 '국민연금이 최대주주라서', '대일청구권 자금이 사용됐기 때문에', '정부의 보호와 육성으로 성장해서' 국민기업이란 주장은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포스코홀딩스는 "무상 대일청구권 자금의 10%인 3080만달러(당시 기준 121억원)가 포항제철소 1∼2기에 건설됐지만 민영화 과정에서 정부 보유지분 매각으로 2163억 원이 환수됐고 제철소 건설에 사용된 유상 청구권 자금 8870만달러는 1996년까지 원금과 이자를 상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더는 국민기업이란 이름으로 포스코를 향한 부당한 간섭과 과도한 요구는 없어져야 한다. 포스코 애칭은 '국민기업'이 아니라 친환경 미래소재 분야의 '국가 대표기업'이 돼야 한다" 덧붙였다.​

◆ 지역 사회 및 포스코 원로회 반발 나서

​이같은 최정우 회장의 주장에 지역 시민단체 및 포스코 원로회 등이 반발에 나섰다.

​포스코 황경로(92) 2대 회장 등 생존 포스코 창립요원 6명은 지난 16일 '현 경영진에 보내는 고언'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포스코 원로회는 "현 경영진이 포스코가 갑자기 더는 국민기업이 아니란 요지의 글을 직원들에게 배포해 큰 당혹감을 느꼈다. 대일청구권자금이 포스코의 뿌리란 사실은 그 돈을 언제 다 갚았느냐는 돈의 문제를 초월하는 역사의식과 윤리의식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포스코는) '철이 있어야 나라의 주권을 지킬 수 있다'는 창립요원들의 민족적, 애국적 공감대 위에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제 와서 몇 가지 빈약한 사유를 내세워 '더 이상 포스코는 국민기업이 아니다'는 주장은 회사의 가장 귀중한 정신적 자산을 스스로 던져 버리려는 개탄스러운 일이다"고 지적했다.​

포스코지주사·미래기술연구원 포항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9일 보도자료를 발표하고 "최정우 회장은 포스코 창립원로들의 고언을 받아들여 더 이상 '포스코는 국민기업이 아니다'라는 억지 주장을 멈추고 포항시민들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 대일 청구권 자금으로 포스코 설립...고 박태준 초대회장 '제철보국' 강조

시민단체 및 원로회의 이러한 주장은 포스코의 역사와 관련이 있다.​

포스코는 고 박태준 포스코 초대회장이 고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1968년 설립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대일 청구권 자금'을 종잣돈으로 활용했으며, 기업 모토가 '제철보국(철강 생산으로 나라에 보답한다)'이다.

​고 박 회장은 생전에 포항의 희생에 대해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 박 회장은 2011년 생전 마지막 연설에서 "지역사회의 이해와 협력도 기억해야 한다. 포항제철을 위해 수많은 주민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 했고 포항 시민들은 인내와 협조를 보내줬다. 지역사회와 포항제철은 공생, 공영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포스코 신입사원들은 입사 시 연수 과정에서 대일청구권 자금의 중요성과 제철보국 창립 정신에 대한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이유로 포스코는 지난 2000년 민영화된 이후로도 정치권 및 지역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다. 포스코 역대 회장들은 지금까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중도 교체되기도 했다. ​

​◆ 전문가들의 주장은 엇갈려

최정우 회장의 주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대기업 특성상 국민들이 기업을 바라보는 입장과 기업 차원에서 보는 입장에 차이가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대기업이 성장하게 된 배경에 국민들의 협력과 협조가 있었다는 인식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굳이 국민기업이 아니다는 메시지를 줄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또한 기업은 기업가치 및 성장동력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최정우 회장의 메시지가 기업 가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로벌 기업임을 강조하고 싶다면 국민들이 보기에 부담스러운 단어가 아닌, 내부적으로 더 좋은 워딩(발언)을 검토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

반면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교수는 "최정우 회장의 발언은 국민기업이라는 명분으로 기업이 지속가능한 최상의 경영적 선택을 하려는데 지역 사회의 이권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포스코홀딩스는 지주사 전환후 본사를 서울에 두기로 했으나 포항 지역사회 및 정치권의 압박에 포스코홀딩스와 산하 미래기술연구원 본사 소재지를 내년 3월까지 서울에서 포항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 교수는 이어 "기업이 잘되려면 위치, 자본구조 등 주요 의사결정을 기업의 지속 성장 가능성을 위주로 결정해야 하는데, 경영 외적인 외부의 압력이 국민기업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지속된다면 '국민기업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게 맞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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