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경영] 버림으로써 지속가능한 은행나무-上

김종운(한국능률협회컨설팅) 승인 2022.04.27 11:06 의견 0

▲살아 있는 화석

은행나무를 일컫는 동서양의 재미있는 이름들이 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 불리는 이름부터 살펴보자. 한자로 은행(銀杏)은 은빛 나는 살구라는 뜻이다. 새콤달콤한 살구를 먹고 나면 씨앗이 나오는데, 은행나무의 씨앗이 그 살구의 씨앗과 매우 흡사하게 생겼다. 색깔만 은빛이 돈다. 그래서 은빛 나는 살구라는 뜻으로 '은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영어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은빛 살구란 뜻의 실버 어프리코트(Silver Aprocot)로 부르기도 하지만, 메이든 헤어 트리(Maidenhair Tree)로 부른다. 은빛으로 윤기 나는 처녀의 머리카락이란 뜻이다. 은행잎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세한 갈래로 나눠진 모양이 보이는데 그 모양이 잘 빗은 처녀의 머릿결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에서는 압각수라는 별명이 있다고 한다. 압(鴨)은 오리, 각(脚)은 다리를 뜻하는데 은행잎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붙여진 별명이다. 씨앗과 잎 모양이 이 나무의 이름을 결정짓는 요소이다.

그런데, 경영과 나무 이야기를 연결 지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던 순간부터 필자는 은행나무를 꼭 포함시킬 생각이었다. 첫째 이유는 은행나무 자체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친근한 나무라는 점이다. 유구한 세월을 견뎌 온 나무라는 은행나무의 가장 큰 특징이 둘째 이유이다.

나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은행나무를 일컬어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학자들은 은행나무의 기원을 중생대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약 3억 년 전부터 거의 모습을 바꾸지 않고 살아왔다고 하니 화석이란 말이 그리 틀리지 않게 들린다.

기업을 경영하는 경영자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있다면 오랜 세월 지금의 사업이 생명력을 가지고 번창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여러 조사에 의하면 기업이 세워져서 30년을 넘기는 확률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꼭 30년은 아니지만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코닥, 노키아, 모토롤라와 같이 한 때 세계를 호령하던 기업을 비롯해 우리나라에도 대우, 기아자동차, 웅진코웨이 등 많은 기업이 몰락의 비운을 맞이했다. 비록 이름은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있지만 주인이 바뀌거나 쇠퇴의 길에 접어든 것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은 현상이 되어 있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기업의 경영자 특히, 도전 정신 하나만으로 기업을 일으킨 창업자라면 더더욱 내가 세운 회사가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세상에 이로움을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은행나무의 오랜 생명력은 기업 경영자들에게는 참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 긴 세월 동안 생명력을 유지함은 물론 우리 주위에서 가장 사랑받는 나무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으니 말이다.

▲버려야 오래갈 수 있다
은행나무는 어떻게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은행나무의 생명력은 버림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생물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진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은행나무가 중생대부터 백악기를 거쳐 현재에 이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지구상에는 엄청난 기후 상의 변화가 있었다.

빙하에 덮이기도 했고, 엄청나게 높은 온도에 휩싸이기도 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겨내기 힘든 극한 상황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극한 환경의 변화 속에서 많은 동물들뿐만 아니라 나무들도 멸종을 했다.

은행나무는 현재 지구상에서 극동 지역에만 분포하고 있지만, 과거 화석을 통해 확인된 바로는 세계 곳곳에 분포했었다고 한다. 빙하기를 거치면서 얼음에 덥히지 않은 극동 지역에서만 살아남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은행나무는 더운 시기를 지날 때는 추위를 견디는 기능을 과감히 버렸다. 반대로 추운 시기를 지날 때는 더위를 견디는 기능을 과감히 버렸다. 버렸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버리고 또 버려온 결과로 은행나무는 암수가 따로 있는 나무가 되어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즉 은행나무는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스스로 생식을 하지 못한다. 나무를 조금 아는 사람 중에 은행나무 꽃가루에 정충이 있는 것을 알고 스스로 이동해서 번식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정충은 암나무의 종자 안에 있는, 눈으로도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샘이 있는데 거기서만 짧은 거리를 이동할 뿐이다.

그렇지만 은행나무는 꺾은 나뭇가지를 땅에 꽂으면 새로운 나무로 자라나는 탁월한 능력으로 이런 불리함을 이겨내고 있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것을 취하기보다는 오히려 과감하게 자신의 일부를 버리고 가벼움과 날렵함으로 그 위기를 극복해 왔기에 은행나무가 지금의 모습으로 우리 주위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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