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경영] 살아 천년, 죽어 천년...주목(朱木)을 주목하라 -上

김종운(한국능률협회컨설팅) 승인 2022.04.11 16:02 의견 0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나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주목(朱木)이 그 주인공이다. 주목은 목재의 붉은 색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내가 처음으로 주목을 본 것은 동아리 선배가 찍은 사진 속에서다. 군락을 이룬 주목들의 자태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첫눈에 사랑에 빠질 지경이었다. 특히, 주목의 열매는 지금까지 본 나무 열매 중에서 으뜸이라 할 만했다. 당시에는 그 나무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주목이라는 이름을 듣고 머릿속에 단단히 각인이 되었다.


▲최고로 쓰이는 붉은나무..열매도 귀해

주목은 나무들 중에서도 꽤나 존중을 받는 편에 속한다. 예컨대, 일본의 신사에서 신을 모실 때 사용하는 홀(笏)을 만드는 데 쓰는 나무가 주목이다. 불상을 만드는 데도 이용되었고, 아주 귀한 이들의 관을 짜는 데도 주목을 썼다. 신성한 일에 쓰는 물건을 만드는 일에 소중한 나무를 쓴 것이다. 아주 크게 자란 주목을 가로로 잘라 만든 바둑판은 최상으로 꼽힌다.

내가 다닌 대학교 교정에도 주목이 몇 그루 있기는 했으나 가장 많은 주목을 한꺼번에 본 것은 소백산 정상 비로봉의 주목군락에서다.

대학 때 야생화 연구회라는 동아리 활동을 잠시 한 적이 있다. 연구회는 봄과 가을이면 야생의 꽃을 찾아 '탐화'를 나섰다. 그 때 수차례 갔던 산이 소백산이다. 주목에 매료된 것은 아마도 가을꽃을 보기 위해 두 번째로 소백산을 찾았을 때로 기억된다.

실제로 주목에 열매가 달려있는 모습은 사진 속 느낌과는 상당히 달랐다. 짙은 초록색 잎에 빨간 열매가 어우러진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특별히 주목의 빨간 열매가 기억에 남는 것은 색깔도 색깔이려니와 그 모양새가 참으로 앙증맞았기 때문이다. 마치 빨간 종지에 까만 열매를 담아 놓은 듯했다.

코로나로 인해 제약이 생겼지만,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을 갈 기회가 있다면 뜰에 기하학적 모양을 하고 있는 나무에 주목해 보기 바란다. 대부분 아름다운 주목이다. 최근에는 이 열매에 함유된 택솔(Taxol)이라는 물질이 혈압을 떨어뜨리고 주목 껍질에는 항암 효과가 있다고 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임상 실험을 거쳐 관련 제품까지 생산되었다고 한다.

다만, 주목 껍질에서 성분을 추출하려면 약 1만2000그루의 나무를 베어야 겨우 2킬로그램 정도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10년에 1미터 남짓 자라는 주목의 생장 속도를 생각하면 함부로 할 일은 아니다. 다행히 목재가 아닌 씨눈에서 더 많은 항암 성분이 있음을 찾아내고 대량 증식에도 성공했다 하니 대중화에 기대를 걸어 볼만하다.

탁월한 생존 기계

과학적으로 보면 주목의 잎은 부족한 햇빛을 최대한 받아들이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짙은 녹색은 빛의 많은 스펙트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색깔이라 한다.

어릴 때 성장이 매우 느린 주목은 다른 나무들 밑에서 햇빛을 제대로 받기가 어렵다. 이 때 짙은 녹색의 주목 잎은 제대로 성능을 발휘하게 된다. 주목의 열매 또한 특별한 목적을 숨기고 있다. 같은 침엽수 종류인 소나무 씨앗에는 공기 주머니가 달려 있어 바람에 멀리 날아가서 번식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주목 열매에는 공기 주머니 같은 것이 없어 멀리 이동할 수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주목은 씨앗을 멀리까지 보낼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붉은빛의 열매는 새들의 눈에 잘 띄어 좋은 먹이가 되는 것이다. 새들이 열매를 먹고 멀리 가서 배설을 해줌으로써 주목은 후손을 멀리 퍼뜨리게 되는 것이다.

실제 소백산에서 맛본 주목 열매는 꽤나 달콤했다. 새들도 좋아할 맛이었다. 리처드 도킨스의 세계적 명저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하는 종족 번식의 본능이 제대로 발현된 모습이라고 할까. 리처드 도킨스는 이 책에서 '생존 기계'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여기서 도킨스는 생존 기계의 행동이 목적의식이 있는 인간의 행동과 매우 닮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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