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에 대한 보복으로 이란 의회가 봉쇄 법안을 의결하면서 전 세계 원유 수송망에 충격이 예고되고 있다. 유가 급등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국내 정유업계의 타격이 예상되는 가운데, 반사이익 가능성도 제기된다.

23일 이란 국영방송에 따르면 이란 의회는 미국의 핵시설 공격에 대한 보복 조치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 법안을 지난 22일(현지시간) 의결했다. 최종 결정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에 달려 있지만 사실상 봉쇄 카드가 공식 테이블에 오른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이라크, UAE 등 주요 산유국의 원유 및 LNG 수출 루트다. 2024년 말 기준 이 해협을 통해 수송된 원유는 전 세계 소비량의 약 20%, 해상 원유 물동량 기준으로는 약 30%에 달한다. LNG 역시 연간 약 8000만톤, 전 세계 해상 수송량의 20%에 해당하는 물량이 이곳을 지난다.

한국 역시 이 루트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내 중동산 원유 도입 비중은 2024년 기준 71.5%이며, 이 중 95%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한다.

국제 에너지 시장은 즉각 반응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최악의 경우 유가는 배럴당 120~13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OPEC 산유국들의 보복을 유발하고, 중동 전역의 원유 공급망을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2011년에도 이란이 해협 봉쇄를 위협하자 브렌트유가 한때 120달러 선까지 급등한 전례가 있다. 당시 실제 봉쇄는 없었지만 시장 심리가 반응한 것만으로도 유가를 강하게 자극했다.

[그래픽=챗GPT]

대한석유협회는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단기간 유가 급등은 석유 수요를 위축시키고, 정제마진 하락으로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현재까지 유조선 운항에는 차질이 없으며 국내에는 약 7개월(207일) 분량의 석유 비축분이 확보돼 있어 유사시 대응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일각에선 이번 사태가 국내 정유사들에 반사이익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전유진 iM증권 연구원은 "정제유 및 원유 운송 차질로 공급이 빠듯해질 경우 국내 정유사들이 정제마진 상승과 재고평가이익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아시아 주요 정제품 수출국 중 하나인 인도는 전체 원유 수입의 46%를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인도 정유공장 가동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며, 수출 물량 축소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인도 석유부 장관은 지난 6월 19일 "해협이 막힐 경우 정제제품 수출량을 줄일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인도는 하루 약 130만 배럴 규모의 정제유를 수출하고 있으며 이는 글로벌 수요의 약 1.3%에 해당한다.

업계는 인도 물량이 줄어들 경우 한국 정유사들이 공급 공백을 메우며 수출 기회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와 정유업계는 비상 대응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한국석유공사 등과 함께 비상상황 점검회의를 열고 종합상황실과 비상대응반을 가동 중이다. 대한석유협회도 "정부와 긴밀한 대응 체계를 구축해 국제 석유시장 변동성을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