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경영] 버림으로써 지속가능한 은행나무-下

김종운(한국능률협회컨설팅) 승인 2022.05.03 13:56 의견 0

▲비워야 채워지는 이치
바로 이 모습 때문에 나는 나의 첫 글을 은행나무로 시작하고 싶었다. 많은 경영자들이 과거의 성공 체험과 자신에 대한 확신 때문에 분명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려놓지 못한다.

결과는 더 큰 위기를 초래하고 만다. 매스컴을 통해 자주 접하는 모습들이다. 그러나 이런 은행나무의 생존 법칙을 통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사례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플랫폼 기업이 세계를 주름잡는 현 시점에서 이 사례가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전략 자체는 새겨볼 만하다고 판단되어 간략히만 언급해 보고자 한다.

바로 16년간 GE를 이끌었던 잭웰치의 이야기다. 그는 CEO 취임 후 시장에서 1, 2위를 할 수 없는 사업은 과감히 처분하는 전략을 썼다. 수많은 사업 중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핵심 경쟁력에 집중함으로써 위기를 극복함은 물론 더 큰 성장을 만들어 냈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로 하면 어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CEO가 된 사티아 나델라는 오피스 온리(Only) 전략을 과감히 버리고 클라우드 기반의 사업으로 전환하면서 침체돼 가던 마이크로소프트를 구해냈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반대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코닥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카메라 기술을 개발하고도 핵심 사업인 화학필름 사업을 버리지 못했다. 노키아 역시 스마트폰 기술을 진작 확보했지만 기존 사업 때문에 활용하지 못했다.

전쟁에서도 버림으로써 득을 취하는 전략이 있다. 배수의 진이라는 전법이 그것이다. 인지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동기'는 '접근동기'와 '회피동기'의 두 가지가 있다. 이 중 '회피동기'는 불안한 상태, 두려운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적 상태를 말한다. 배후에 물을 두는 것은 병가에서는 쉽게 택하기 어려운 병법이다. 퇴로를 스스로 차단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불안한 상태, 두려운 상태가 극대화된다. '회피동기'를 최대로 자극할 수 있는 것이다.

초한지에 등장하는 명 전투 장면 하나. 한신은 정형구전투에서 적은 병사로 큰 적을 맞아 싸우면서 배후에 강을 두는 전법을 택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절박함을 병사들에게 심어 줌으로써 목숨을 걸고 싸우게 만드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한신이 말했다. "내가 병사들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을 다 부릴 수 없는데, 만약 사방이 뚫린 곳에 진을 쳤다면 병사들은 모두 흩어져 도망쳤을 것이오. 배수진으로 도망칠 곳이 없었기에 스스로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길 수 있었소."

이것이 바로 버림이 주는 효과였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이렇듯 나무에도, 경영에도, 전쟁에도 때로는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더 큰 이득을 얻고 생명력을 키우는 경우가 있다. 비워야 채워지는 이치이다.

▲은행나무의 본질은 장수(長壽)
우리나라에는 은행나무 명목들이 많다. 경기도 용문산 용문사의 은행나무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목이다.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세자인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슬픈 여행을 가는 길에 심었다는 설과 신라 고승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은 것이 이렇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찌 되었건 용문사가 신라 선덕여왕 때 지어졌으니 대략 1000년은 족히 넘었다 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경영자들이 핵심 역량에 집중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떠한가? 돈이 된다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사업을 확장해 나가려는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유혹이 다가올 때, 용문사 은행나무와 같은 명목을 한 번 찾아보면 어떨까? 오랜 세월 생명력을 유지해 온 은행나무의 삶을 생각해 보면 버림의 철학이 전해지지 않을까.

끝으로 은행나무로부터의 배움을 정리하면서 잠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하면서 마무리해 볼까 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티격태격 다투었던 소재이다. 아마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할 것 같다.

은행나무는 침엽수인가 활엽수인가? 답부터 말하자면 활엽수라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침엽수와 활엽수를 구분하는 기준은 잎 모양이다. 잎의 모양이 바늘처럼 뾰족하면 침엽수, 종이처럼 넓적하면 활엽수로 구분한다.

전문적인 분류 방법은 씨앗이 껍질(씨방)에 감싸져 있으면 속씨(피자)식물로, 껍질이 없이 씨앗이 노출되어 있으면 겉씨(나자)식물로 구분한다. 침엽수가 모두 나자식물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은행나무는 씨방이 없이 노출된 씨앗을 가지고 있어 나자식물이지만 침엽수로 분류하기는 곤란하다. 모양 자체만으로 보면 넓은 잎인지라 활엽수로 부르는 것이 맞겠다.

다만, 아주 오래전에는 은행나무 잎도 소나무 잎처럼 바늘같이 갈라져 있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개의 잎들이 켜켜이 붙어 지금의 모습처럼 넓은 오리발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모습과는 비록 좀 다르긴 하지만 이런 진화의 과정이 있었기에 아직도 은행나무를 구분할 때 침엽수와 활엽수 사이를 오가는 일이 있다.

이제 사실을 알았으니 지금부터는 더 이상 은행나무를 두고 침엽수인지 활엽수인지에 대해 논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보다는 은행나무의 긴 생명력과 그 생명력의 근간에 있는 핵심으로의 집중을 통한 경쟁력 강화에 주목함으로써 경영의 혜안을 얻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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