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이창용 총재 신년사 유감…한국 주식시장의 진짜 문제는 무엇인가

사상최고 수출에도 외인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
신산업 육성...'백종원 1000명 발굴'처럼 공허
규제완화 주장도 실질적 성과 없는 공염불에 불과
상법 개정, 가장 현실적이고 실효성 있는 해법

주주시론 승인 2025.01.02 15:50 | 최종 수정 2025.01.02 16:15 의견 0

지난해 한국의 수출은 사상 최고치인 6838억 달러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8.2% 증가한 수치다. 명목 지표의 최고치가 실질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대한민국 경제가 하락세라는 진단이 널리 퍼진 상황에서 이러한 수출 증가가 의외로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수출이 호조를 보였음에도 지난해 코스피는 9.6%, 코스닥은 21.7% 급락했다. 실물 경제와 주식 시장의 이러한 괴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수출이 증가했는데도 자본시장이 무너진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주식 투자자들이 마주한 근본적 고민이다.

이 괴리를 해결하기 위한 접근법으로 밸류업과 상법 개정안이 등장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떠나간 외국인 투자자들을 다시 불러오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신년사를 통해 밸류업을 언급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실망스럽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신년사 [자료=한국은행 제공]

이 총재는 환율 상승의 원인을 외국인 자금 유출과 연결 지으며, 규제 완화와 신산업 육성을 강조했다. 겉으로 보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핵심 문제를 비켜간 측면이 있다.

먼저, 기업들이 이익을 내고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떠난 핵심 이유는 주주환원 부족에 있다.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지난 몇 년간 높은 수출 실적과 막대한 이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익을 주주와 충분히 나누지 않았다. 글로벌 평균 대비 현저히 낮은 배당성향은 한국 기업의 고질적 문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기업이 이익을 올리더라도 그 혜택이 자신들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판단할 때 주식시장에서 이탈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배구조 문제는 주주환원 부족의 근본 원인 중 하나다. 한국의 대기업은 여전히 소수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경영권 방어와 사내 유보금 확대에 집중하면서 주주가치 제고에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 총재가 이런 메커니즘을 모를 리 없건만 기계적으로 신산업 육성과 규제 완화를 주문한 것은 많이 아쉽다. 정작 시급하고 필요한 처방은 하지 않은 채 뜬구름 잡는 얘기만 늘어놓는 인상이기 때문이다.

신산업 육성은 정부가 나선다고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백종원 1000명 육성'처럼 현실을 모르는 정치인의 구호에 불과하다.

규제 완화 역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늘 강조돼 왔지만, 실제로 변화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타다 금지법, 주52시간 근로제, 양곡관리법, 대형마트 영업규제 등 새로운 규제들이 계속해서 추가되었다.

이 규제들은 시장의 자율적 교정을 막고, 기득권층의 이익과 목소리를 보호하는 결과를 낳았다. 4년 임기의 정치인들은 이 문제를 해결할 동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규제 완화는 공염불로 끝나기 일쑤였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일 신년사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제공]

우리 자본시장의 체급을 올리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안은 상법 개정이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강화다. 이는 소액주주를 특별히 우대하라는 것도 아니고, 투자 대신 배당을 늘리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모든 주주를 공평하게 대우하라는 상식이다.

이 총재가 언급한 신산업 육성이나 규제 완화는 실행 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실현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반면 상법 개정은 상대적으로 빠르고 명확하게 주식시장에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더 이상 공허한 구호로 시간을 허비할 여유는 없다. 상법 개정을 통해 주식시장에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것이 지금 우리 경제가 가장 필요로 하는 현실적인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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