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함대] 병사 잃고 총알 떨어진 푸틴의 퇴로는

함태영(군사 칼럼리스트) 승인 2022.04.07 17:28 | 최종 수정 2022.04.07 17:57 의견 0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주민 보호와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명분으로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네오 나치주의자들이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을 학살하고 있다는 핑계를 댔다.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들은 월등한 러시아의 군사력을 고려해 개전 후 3일 이내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고, 친러시아 정권을 수립하는 정권교체(Regime Change)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군과 국민의 강력한 저항으로 푸틴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전력을 집중한 수도 키이우 지역에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기는 커녕 우크라이나군의 반격에 전력을 손실하고 퇴각하기에 이르렀다. 전력을 집중한 또 다른 지역인 우크라이나 남부 지역과 돈바스 지역의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전쟁은 6주를 넘어 장기화하는 모양새다.

러시아 육군은 14개 군단으로 이뤄져 있다. 1개 군단의 평균 병력은 2만명으로, 러시아 육군 14개 군단의 총인원은 약 28만명에 달한다. 이 중 우크라이나 침공에 동원된 러시아 병력은 20여만명으로 알려져 있다. 행정인력을 뺀 가용병력 대부분을 동원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에서 수천 Km 떨어져 있는 극동, 시베리아 지역의 동부군관구 병력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3일 NATO가 추산한 러시아군의 사망자 수는 7000명에서 1만5000명 선이다. NATO는 1명의 사망자 당 3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해 부상자 수는 3만명에서 4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앞서 같은달 20일 러시아 친정권 언론인 콤스몰스카야(Komsomoskaya)는 러시아 국방부 추산 9861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여러 정보를 취합해 보면,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된 병력 20만명 중 20% 이상인 4~5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전선에서 이탈한 것으로 추정된다.

군사전문가들은 부대(연대, 대대 등) 병력의 30% 이상 손실 시, 부대가 작전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판정한다. 부대 병력이 40% 이상 손실될 경우에는 부대가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은 것으로 평가한다. 부대병력이 30% 이상 손실되면 해당부대는 후방으로 철수시켜 병력 및 장비 등을 보충하는 부대 재편성을 해야 다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키이우 전선 등 최전선에서 전투를 벌인 러시아 전투부대의 많은 수는 작전/전투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 현재 알려지고 있는 러시아군 피해까지 고려하면, 병력 및 장비를 보충하는 재편성 없이는 마리우폴을 포함한 몇몇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투를 지속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상황은 이렇지만 러시아군은 부대를 재편성할 병력이 절대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러시아군은 병력부족으로 인해 러시아법상 전쟁에 투입할 수 없는 징집병도 신분을 모병으로 세탁해 전장에 투입하고 있다. 또한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시리아와 체첸에서 용병을 고용해 우크라이나 전선에 밀어 넣고 있다. 러시아 점령하의 돈바스 지역에서는 동원령을 선포해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고령층을 전장에 보내 총알받이로 사용한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러시아는 향후 병력부족에 대한 특단의 조치 없이는 작전기능을 상실한 부대를 온전히 재편성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탄약, 식량 등을 전투부대에 원활히 공급하지 못하는 러시아군의 보급문제는 러시아 군의 사기저하, 작전능력 반감의 주요 요인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병력부족과 보급부실 외 취약한 통신대책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할 수 밖에 없는 요인이다. 통신보안을 유지해야 하는 전장에서 일반 상용무전기와 휴대전화 등을 통해 작전지시 및 결과를 확인하다 위치와 작전계획이 노출돼 러시아 최고위 지휘관이 전선에서 전투를 지휘하다 사망하는 경우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27일에는 러시아가 지휘소로 사용하고 있는 체르노바에브카 공군기지가 우크라이나군으로부터 포격을 받아 러시아 제 49 연합군 사령관인 레잔체프 중장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전쟁에서 사망한 최고위급 지휘관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투입한 20명의 장성 중 7명째 사망자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군 장성의 무덤이 되고 있는 셈이다.

러시아가 지휘체계 붕괴, 보급문제, 가용병력 부족으로 개전 초기처럼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전방위적인 공세를 펼칠 수 있는 능력은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방부가 지난달 25일 실시한 브리핑은 이러한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세르게이 루드스코이 제 1참모차장은 브리핑에서 "1단계 작전은 대부분 완료되었다. 러시아 군의 주요 목표인 돈바스 해방에 주력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체를 제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 것으로 서방은 평가하고 있다. 막대한 전쟁비용, 감당하기 어려운 병력소모, 군 전력손실 등을 고려할 때 푸틴이 명분있는 후퇴를 준비할 시점이 도래한 것이다.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점령하면, 푸틴의 개전 명분인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주민보호'를 달성했다고 선전할 수 있어 권력기반 약화없이 푸틴의 정치적 위상 유지가 가능할 수 있다. 이를 반증하듯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주변의 병력을 철수시켜 돈바스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월 5일 현재, 키이우를 포위하고 있던 러시아군은 벨라루스로 철수했고, 우크라이나 군은 철수하지 못한 러시아 군 잔당을 소탕하고 있다.

푸틴 입장에서 전개 가능한 시나리오를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협상은 현재 5차까지 진행됐지만, 영토문제와 민간인 학살 등 전쟁범죄 문제로 협상은 더이상 진전되기 어려워 보인다. 푸틴의 정치적 입지와 개전 명분 달성을 위해 러시아가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우크라이나 남부 및 돈바스 지역에서 소모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가 개전 후 보여준 전쟁수행능력을 감안하면 이 지역에서도 러시아의 압도적인 승리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협상과 소모전을 지속하다 우크라이나의 민간인 피해, 러시아의 과도한 전비지출, 병력문제 등으로 조건부 협상 타결 또는 현 전선에서 정전 합의될 가능성이 높다. 어떠한 경우라도 돈바스 지역의 영토문제는 미래 분쟁의 불씨로 남아 있을 것이다. 명분 없이 시작한 이번 전쟁은 정치·경제적으로 푸틴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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