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경영] 애자일(Agile)의 대명사 ‘대나무’-下

김종운(한국능률협회컨설팅) 승인 2022.03.25 14:56 의견 0

▲생존과 직결되는 민첩성
세계적인 경영대학원인 프랑스 인시아드의 이즈 도브 교수 역시 급속도로 변화하는 기업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민첩성(Strategic Agility)을 갖추라고 조언하고 있는데, 전략적 민첩성의 3대 요소로 전략적 감수성, 집단적 몰입, 자원 유동성을 말하고 있다. 이 역시 민첩성 경영에서 말하는 요소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이브 도즈 교수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전략적 민첩성’을 상실하고 혁신이 중단돼 역사 속에서 사라지곤 한다”며 “기업 성장을 위해서는 생존 방식의 습득이 아니라 어떻게 전략적 민첩성을 유지하고 쇄신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휴대폰 시장에서 모토롤라와 노키아가 전략적 민첩성을 보이지 못해 쇠퇴의 길을 걸었고, 음반 시장에서 EMI나 소니가 역시 마찬가지의 길을 걸었다. 결국 기업에 있어 유연성과 민첩성은 경영 성과의 개선 수준이 아닌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흔히 치타의 사냥 실력은 속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민첩성과 가속도에 있다고 한다. 치타는 민첩성에 기반을 둔 사냥을 통해 생존을 하고 있다. 치타가 민첩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지속적인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것이다.

대나무는 어떠한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대나무 역시 대단히 유연하고 민첩한 나무다. 대나무가 이런 유연성과 민첩성이 없다면 사람들로부터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나무가 되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줄기 상태로, 뿌리로서, 잎으로서, 때로는 온전한 모습으로, 때로는 갈라진 모습으로 대나무는 사람들의 다양한 니즈(Needs)를 충족시켜 왔다. 그리고 민첩하게 개체를 늘려왔기 때문에 사람들의 손에 그렇게 많이 쓰이면서도 생존의 위협 없이 곳곳에서 여전히 잘 자라고 있기도 하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제주도에 가면 조릿대라는 식물이 있다. 대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아주 낮게 자라는 식물이다. 그런데 최근 이 조릿대가 엄청나게 번식하면서 한라산 생태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원인에 대한 몇몇 주장들이 있는 중에 하나는 말과 관련 있다. 제주도에서는 본래 말을 방목해서 키웠는데 배설물 문제 등 미관상 좋지 않다 하여 가둬 키우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제주도 입장에서는 꽤나 부담이 되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이 말들이 조릿대를 먹이로 하고 있었는데 천적이 없어져버리자 조릿대가 급속히 자라났다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 있는 주장이다. 민첩성이 탁월한 조릿대의 증가는 다른 식물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으니 참 세상은 아이러니하다.

참고로 조릿대를 차로 끓여 먹으면 고혈압에 최고의 효능을 보인다고 한다. 오래된 두꺼운 잎 15장 정도를 물 2리터에 끓여서 마시면 된다. 이때 잎은 어린잎보다 오래된 두꺼운 잎이 효능이 있다 하니 역시 뭔가를 고치는 데는 연륜이 필요한 모양이다. 조릿대의 지하경은 암세포 증식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애자일의 핵심 역시 '사람'이다

최근 많은 기업들이 애자일 경영을 한다거나 애자일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 그런데 막상 그게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전문가를 연결해주는 스타트업 '크몽'의 박현호 대표를 만났다. 조직이 점점 커지면서 프로젝트 추진에 속도가 더뎌지거나 의사결정에 어려움이 생겨나는 것 같아 파일럿으로 몇몇 애자일 팀을 만들어 운영했단다. 수개월의 운영 결과 나름 성공적이라고 판단되어 일부 지원부서만 제외하고 전 조직을 애자일 팀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했다.

"신뢰입니다. 신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애자일 팀 운영의 성공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는 아주 간단하면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답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애자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의사결정 권한을 위임해야 한다. 그런데 신뢰가 없으면 권한 위임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되면 무늬는 애자일 팀인데 자체적으로 의사결정을 전혀 하지 못하고 계속 경영진이 개입하게 된다. 결국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영진은 아무래도 실무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현장의 소리, 현장의 기술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현장과 동떨어진 의사결정을 할 위험이 오히려 더 커진다는 것이다. 한국 기업에 특히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2011년 게리 하멜이 '먼저 모든 관리자를 해고하자'라는 급진적인 글을 통해 경영의 가장 큰 비용과 비효율은 바로 다름 아닌 관리자들로부터 발생한다고 했던 일침과 맥을 같이 한다. 그의 주장 역시 '관리자들은 일반 직원의 세 배 가까이 되는 인건비 부담도 문제지만 일선의 현실과 가장 먼 거리에 있으면서 의사결정의 품질과 속도를 늦추는 주요 요인'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박현호 대표의 말과 같은 뜻이다.

조직디자인연구소의 정재상 대표는 저서 '애자일 컴퍼니'에서 한국 기업에서 애자일이 안 되는 이유를 재미있게 표현했다. 무척 공감가는 말이라 공유해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이든 빨리 빨리 하는 문화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는 대표적인 애자일 조직 사례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다.

그 정답은 필자의 친구가 알려주었다. "우리나라 기업의 애자일은 독재 방식의 애자일이다." 그렇다. 필자가 국내 여러 기업들의 조직과 리더십을 진단해보면서 느꼈던 것은 우리 기업의 리더나 구성원들은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일사불란하게 실행하는 추진력은 정말 가히 세계 제일이라는 것이다.' 환경이 비교적 안정적이던 시대에는 똑똑하고 추진력 있는 한 두 명의 리더가 조직의 방향을 잘 제시할 수 있었지만 환경이 점점 복잡해지고 불확실해진 요즘에는 그런 방식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우리 기업들이 접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렇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오래된 벗을 죽마고우라 부른다. 대나무로 말을 만들어 함께 타고 놀던 친구들이란 뜻이다. 대나무 말을 타고 놀 때는 정해진 자리가 없다. 한 명이 가장 앞자리에 섰다가 순서를 바꿔 제일 뒷자리에 서기도 한다. 그래도 질서가 유지된다. 때론 친구들 중에서 꽤나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친구가 있기도 하지만 보통 이런 커뮤니티는 리더십에 의해 유지되기 보다는 암묵적인 신뢰로 유지된다.

조직이론가인 헨리 민츠는 리더십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커뮤니티십이라는 신조어를 말했다. 조직은 리더만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핵심부나 주변부 모두 공동체 의식을 가진 모든 구성원의 참여가 중요하다는 의미로 커뮤니티십을 말한 것이다. 효과적인 조직은 수동적인 자원의 집합체가 아니라 능동적인 인간 존재로 구성된 공동체이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조직의 더 높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누가 시키지 않더라도 자발적이고 열정적으로 공동의 과제에 참여한다는 것이 민츠버그의 설명이다.

그런 면에서 '애자일 컴퍼니'에서 정재상은 변화에 민첩한 조직의 핵심이 바로 '사람'이라고 했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측기법이나 다른 기업들이 운영하는 애자일 팀의 구조를 도입한다고 해도 통찰력을 가진 리더와 참여적이고 열정적인 구성원을 결코 대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깊이 새겨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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