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다. 고향, 귀성길, 차례상, 재래시장 등의 단어가 떠오르는 때다.

오래 전부터 쌀농사를 기반으로 한 한국의 농경사회는 집단적 협동 없이는 유지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모내기와 수확의 적기, 공동 노동의 필요성은 ‘함께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내면화시켰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공동체적 도덕성과 약자를 돌봐야 한다는 규범이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 규범은 단순한 관습을 넘어, 이데올로기적 장치의 언어로 반복적으로 재생산되었다. 재래시장 살리기도 그 일환이다.

학교는 ‘서민을 돕는 미덕’을 가르쳤고, 언론은 명절마다 ‘전통시장 장보기’를 미담으로 포장했으며, 국가는 상품권과 지원금 정책을 통해 재래시장 이용을 권장해 왔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6월 6일 서울 사당동 남성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대화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서구 좌파 이론가의 개념으로 본다면, 이 모든 장치들이 개인들을 ‘도덕적 소비자’로 호명한 것이다.

호명의 효과는 뚜렷하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는 단순한 경제적 거래를 넘어 ‘나는 전통을 지키고, 공동체를 보호한다’는 자기 이미지로 연결된다.

공정무역 커피를 사면 세계 빈곤 아동을 돕는 기분이 들고,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면 ‘서민경제를 살렸다’는 자부심을 얻는 식이다.

주체는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지만, 사실은 이미 오랜 농경 전통과 공동체적 담론 속에서 그렇게 호출된 것이다.

주체의 신념과 무관하게 결과는 정반대다.

소비자가 재래시장에서 일년에 두어 번 장을 본다 해도 그 행위는 종사자의 구조적 경쟁력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단지 일시적 위안과 상징적 만족에 그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명된 주체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채, 그것을 도덕적이고 경험적으로 타당한 신념으로 받아들인다.

추석을 앞두고 지급된 민생회복지원금도 다르지 않다. 재래시장 활성화라는 취지가 현금살포에 대한 부채의식을 옅어지게 했는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론 효과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민생회복 소비쿠폰은 마치 마스크팩 같다. 잠깐 기분을 좋게 할 뿐이다. 쿠폰을 쓰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재래시장을 살리는 길 같은 것은 없다. 정치인들이 명절에 찾아가 먹방쇼를 한다고 재래시장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우리가 관심을 둘 부분은 재래시장에서조차 밀려나고 있는 고령의 종사자다.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잠깐의 호의가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다.

최저임금제도에 대한 조정이 필요한 이유다. 최저임금은 생산성이 낮은 근로자의 취업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잔인한 제도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박경하, 2019)에 따르면 최저임금은 50대 미만의 연령층 내에서 고용을 증가시키는 반면, 50세 이상의 연령층 내에서는 고용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제도를 완화하고 부족한 시급은 EITC(근로장려금) 같은 정책을 통해 정부가 보충해야 하는 이유다.

저렴한 시급이 가능하다면 많은 소상공인들도 기꺼이 어르신들을 고용하는 옵션을 고민할 것이다.

정치가 개입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런 구조적 개선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소비쿠폰으로 경제를 살린다’는 마케팅이나, ‘착한 소비’를 통한 심리적 만족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한다.

재래시장 종사자들을 단순히 ‘전통의 수호자’로 호명하는 이데올로기적 장막을 걷어내고 그들의 실제 생활 안정과 고용 기회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모색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