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 생각보다 너무 노잼이네. 지금이라도 나갈까?”
심드렁하게 팝콘을 오물거리던 A씨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수 없다’는 확인의 표시였다. 이미 1만5000원을 내고 표를 샀고, 소중한 시간까지 투자한 마당에 지금 나가버린다면 모든 것이 허무해진다는 생각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지루함을 견디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처럼 되돌릴 수 없는 지출이 마음에 걸려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심리 현상을 ‘매몰비용 효과(Sunk cost effect)’라고 한다. 경제학적으로 매몰비용은 합리적인 결정을 할 때 고려해서는 안 되는 요소다. 이미 사용된 비용은 다시 회수할 수 없는, 말 그대로 ‘엎질러진 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돈이나 노력, 시간 등이 일단 투입되면 성공 가능성과 무관하게 그것을 지속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기 합리화 욕구와도 맞닿아 있다.
흔히 연애 관계에서 나타나는 ‘정 때문에’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로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이미 쏟은 시간과 감정 등을 이유로 관계를 쉽게 정리하지 못한다. 이렇듯 ‘매물비용’은 집요하다. 일단 매물비용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그것을 ‘투자’로 착각하고, 성과가 미미해도 끝까지 버티며 애써 긍정적인 의미를 찾으려 한다. 그럼에도 결국 실패로 귀결되면 자기 책임보다는 외부 상황이나 주변 환경 탓으로 돌리려 한다. 매물비용을 고려해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르는 것은 아니다.
‘매물비용 효과’는 ‘콩코드 효과(Concorde effect)’라는 용어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공동 개발했다. 그런데 문제는 막대한 비용과 경제성 부족이 드러났음에도 이미 투입한 자원이 아깝다는 이유로 사업을 강행했다. 1972년까지 총 20대가 제작됐지만 유지비는 눈덩이처럼 불었고, 수익은 거의 없었다. 투자된 비용이 아깝다고 하더라도 중도 포기했어야 옳았다.
결국 2000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콩코드기가 추락해 113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신뢰는 무너졌고 승객은 급감했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던 사업은 2003년 완전히 중단됐다. 투입된 비용은 무려 190억 달러. 콩코드 사업은 한동안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의 대표적 사례로 통했다.
합리적인 경제 주체라면 미래의 편익과 비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미 지출된 자원은 미래의 결정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은 이성보다 비합리적인 감정에 흔들릴 때가 많다. ‘아깝다’는 감정이 본전을 되찾으려는 집착을 불러오고, 매몰비용의 늪에 빠져 더 큰 손실을 자초하는 잘못된 선택을 강요한다.
‘매몰비용은 효과’는 일상 속 다양한 영역에서 나타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도 매몰비용의 덫은 빈번하게 등장한다. 프로젝트의 실패가 명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투입한 인력과 자금이 아까워 계속 사업을 끌고 가다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다. 개인의 투자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식 투자에서 손실이 커졌을 때, 지금 팔면 손해만 확정된다는 생각에 손절하지 못하고 버티다가 더 큰 손실을 보게 된다.
전문가들은 매몰비용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로베이스 사고(Zero-based thinking)’를 강조한다. 과거의 잘못은 과감히 리셋하고, 현재 시점에서 미래의 편익과 비용만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미련을 두기보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매몰비용 효과’는 단순한 심리적 오류가 아니다. 비합리적인 판단이 어떻게 경제적 손실로 이어지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실착에 대한 교훈이다. 우리의 지갑과 시간을 지키려면 이미 지나간 비용에 얽매이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오직 미래를 기준으로 선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더 현명한 경제적 주체가 될 수 있다.
김규회(도서관닷컴 대표, 전 동아일보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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