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산하의 공익법인 4곳 중 1곳이 수입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자금을 사업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KCC, LG, KG, 동국제강, 롯데 등이 운영하는 공익법인의 사업비용 비율이 특히 낮았다. SK그룹이 운영하는 행복전통마을, SM그룹의 필의료재단 등 일부는 최근 2년 연속 사업비용이 ‘0’으로 드러나 법인의 존립 자체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4일 기업데이터연구소 CEO스코어가 공시대상기업집단의 특수관계인인 공익법인의 사업수행비 지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73개 그룹의 188개 공익법인의 사업수입은 9조5954억원, 사업수행비용은 6조9209억원으로 수입 대비 사업수행비용 비율이 72.1%를 기록했다.

이는 이전년도인 2023년 대기업집단 공익법인의 사업수입 9조7767억원, 사업수행비용 7조1043억원, 수입 대비 사업수행비용 비율이 72.7%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0.6%p 하락한 수치다.

사업수행비용은 공익법인 등이 추구하는 본연의 임무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혜자, 고객, 회원 등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활동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다.

특히 전체 조사대상 73개 대기업집단 중 23.3%에 해당하는 17곳이 수입 대비 지출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KCC(1.4%)를 비롯해 LS(4.4%), KG(13.6%), 동국제강(16.4%), 롯데(22.2%), 한화(23.6%), KT(23.8%), 코오롱(28.1%), 사조(28.9%), 태광(33.2%), HDC(36.6%), 넷마블(45.2%), 반도홀딩스(46.3%), 한진(46.6%), 아이에스지주(47.0%), DB(48.3%), 한솔(49.9%) 등이다.

KCC가 운영중인 서전문화재단과 엠앤제이문화복지재단 등 2곳의 지난해 사업수입은 160억원에 달했지만, 재단 설립 취지에 맞게 사용한 사업수행비용은 2억원(1.4%)에 그쳤다. 특히 서전문화재단은 지난해 사업수입이 160억원으로 전년(74억원) 대비 116.0% 급증했지만, 사업수행비용은 오히려 2023년 1억5000만원에서 2024년 8000만원으로 46.7% 줄였다.

대기업 공익법인 중 사업수행비용 지출이 2년 동안 전무 한 곳도 있었다. SK 공익법인인 행복전통마을은 2023년과 2024년에 각각 12억원, 14억원의 수입이 발생했지만, 2년 연속 사업수행비용이 0원을 기록했다. 행복전통마을은 고택과 문화재 보수·관리와 이를 활용해 발생한 수익으로 지역소외계층 일자리 창출로 사회에 환원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해당 공익법인을 설립한 출연자는 SK 공익법인인 행복나눔재단과 SK에너지다.

SM 공익법인인 필의료재단도 사업비용을 모두 일반관리비용으로 분류하면서 사업수행비용이 2년 연속 전무했다. 필의료재단은 서울 강서구에서 강서필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우오현 SM그룹 회장 아들인 우기원 SM하이플러스 대표가 지난해 1675억원에 해당하는 삼라, 동아건설산업, SM스틸 등 계열사 주식을 필의료재단에 기부했다. 이 주식의 상당수는 2023년 9월 모친인 고(故) 김혜란 전 삼라마이다스 이사가 별세하면서 상속받은 지분이다. 필의료재단은 지난해말 기준 승계 핵심 회사로 꼽히는 삼라의 보통주 지분 5%(12만6359주)를 쥐고 있으며, 해당 지분은 임원임면, 정관변경 등의 일부 안건에 대해 의결권 행사가 가능하다.

이번 조사에서 수입 대비 사업수행비용 비율이 가장 높은 대기업집단 1위는 신영이 차지했다. 신영문화재단은 지난해 사업수입이 0원이었으나, 같은 기간 1억8600만원을 사업수행비용으로 지출했다. 이어 아모레퍼시픽(211.3%), 넥슨(120.9%), 카카오(115.5%), 하림(108.5%), 영풍(103.3%), 부영(101.2%), 현대백화점(100.9%), 대신(99.8%), 효성(98.9%) 등도 사업수행비용 비율이 높은 상위 10위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사업수행비용이 액수 기준으로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HD현대로 조사됐다. HD현대그룹 산하 9개 공익법인의 사업수행비용은 지난해 2조8966억원으로, 2023년 3조927억원 대비 1961억원 감소했다. 이어 사업수행비용 감소액 하위 10곳은 포스코(269억원↓), SK(69억원↓), 네이버(63억원↓), 카카오(59억원↓), LG(40억원↓), 농협(36억원↓), SM(19억원↓), 삼성(18억원↓), KT(15억원↓) 등이다.

반면, 지난해 사업수행비용 액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곳은 현대자동차로 나타났다. 현대자동차 산하 5개 공익법인의 사업수행비용은 2023년 3121억원에서 지난해 3341억원으로 220억원 늘었다. 한진(163억원↑), OCI(78억원↑), GS(53억원↑, 파라다이스(44억원↑), 한화(33억원↑, 부영(22억원↑), 효성(19억원↑), 삼천리(16억원↑), 글로벌세아(16억원↑) 등도 공익법인의 사업수행비용이 크게 증가했다.

CEO스코어 관계자는 “공익법인의 사업수행비용이 제대로 지출되지 않고 있다면, 공익법인이 본래 설립목적에 따라 공익사업에 집중하기 보다는 오너일가의 우호지분이나 절세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