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지니틱스의 경영권 분쟁이 장기화하면서 최대주주와 현 경영진 간 갈등은 물론, 소액주주들의 피로감이 극대화되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대주주인 헤일로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인터내셔널 코퍼레이션(헤일로)이 법원에서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허가받으며 우위를 점한 가운데, 현 경영진은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 등으로 맞서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주 이익 희생 가능성이 커지자 투자자들의 불신은 깊어지고 있다.
지니틱스 분쟁의 출발점은 작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일로는 서울전자통신 등으로부터 지니틱스 지분 30.93%를 약 210억 원에 인수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권석만 대표와 다수 경영진을 선임했지만, 곧바로 양측 간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헤일로는 현 경영진이 경쟁업체를 설립해 기술을 유출했다며 해임을 추진했고 현 경영진은 회사의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는 점을 앞세워 외국인 이사의 진입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미 헤일로가 실질적 지배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외국인 이사 선임을 배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리며 경영진 논리를 일축했다.
오는 29일 열릴 임시주총에서는 헤일로가 추천한 이사진이 새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다. 헤일로는 34.4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권석만 대표 지분율은 0.34%에 불과하다.
업계에서는 헤일로가 계열사 및 우호 지분까지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미 법원 판결 직후 헤일로는 권 대표에 대한 직무집행정지 소송까지 제기해 경영권 장악 의지를 분명히 했다.
이에 맞선 현 경영진의 카드가 문제다. 지니틱스는 지난해 정관을 변경해 신주인수권부사채(BW)와 전환사채(CB) 발행 한도를 없앴고, 필요 시 유상증자도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두었다.
이번 분쟁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경영진이 외부 자금을 끌어들여 지분 희석을 통해 최대주주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관측이 강하다.
그러자 헤일로는 “경영진이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해 최대주주 지분을 희석하려는 시도를 중단하라”는 내용증명을 지니틱스 이사회에 발송하기도 했다.
신주 및 사채 발행 시 주총 결의를 의무화하고, 발행 규모를 제한하라는 정관 변경 요구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반갑지 않다. 회사는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39.7% 줄어드는 등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데, 경영권 다툼으로 경영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상증자 가능성이 불거지자 주가 하락 우려까지 겹쳤다. 포털 사이트 종목토론방에는 “무능한 경영진 욕심의 결과”, “권석만은 물러가라”는 글이 잇따르고 “지니틱스 너네 싸우는 거 관심 없다”는 냉소 섞인 반응도 눈에 띈다.
단기 주가 등락에 일희일비하는 대신, 경영 정상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임시주총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지니틱스 앞에는 난제가 산적해 있다.
헤일로 측 이사진이 들어서면 경영진 교체가 불가피하고, 그 과정에서 기존 조직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현 경영진이 유상증자 등의 방식으로 버틴다면, 소액주주 지분 희석과 주가 하락이라는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지니틱스 사례는 국내 중소형 상장사에서 반복되는 경영권 분쟁의 민낯을 보여준다. 최대주주와 경영진이 끝없는 법정 다툼에 몰두하는 사이, 기업 가치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29일 임시주총은 분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지만, 이사회 의장을 현 경영진이 장악하고 있는 만큼 헤일로 측의 그림대로 주총이 전개될 것이라고 낙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