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불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금호석유화학이 나홀로 실적 방어에 성공하며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수익성 낮은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고부가가치 합성고무에 집중한 전략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 7조1550억원, 영업이익 2728억원을 기록했다. 3년 연속 이익 규모는 줄었지만, 경쟁사들이 적자 행진을 기록하는 것과 대비 꾸준히 이익을 기록했다.

금호석유화학과 함께 석유화학 빅4로 일컬어지는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각각 -5632억원, -8941억원, -3002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석유화학 업황은 중국발 공급과잉, 글로벌 수요 부진 및 과잉 투자가 겹치면서 4년째 장기 불황에 빠져 있다. 중국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에틸렌 생산능력을 약 70% 이상 늘리며 글로벌 석유화학 공급 과잉을 초래했다.

반면 2022~24년 동안 글로벌 석유화학 제품 수요 증가율은 코로나 이전(연 4% 수준) 대비 절반 수준인 연 2% 이하에 그쳤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2017~2019년 3년간 나프타분해설비(NCC) 증설에 10조원 이상을 투자한 바 있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모두 신규 NCC 플랜트를 가동했다.

[그래픽=챗GPT]

금호석유화학이 경쟁사들과 달리 꾸준한 실적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사업 구조 차이에서 기인한다. 석유화학 업계는 납사를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 등 기초 유분을 생산하는 업스트림과 이를 가공해 합성수지·합성고무를 만드는 다운스트림으로 나뉜다.

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은 업스트림에 강점을 가진 반면 금호석유화학은 다운스트림, 특히 합성고무 분야에 특화돼 있다.

금호석유화학은 NCC를 보유하지 않고 고부가 합성고무(SBR, BR, NBR, LATEX)와 합성수지(PS, ABS, EPS, PPG)에 집중하는 전략을 취해 불황 속에서도 수익성을 방어할 수 있었다.

특히 합성고무 부문의 실적 기여가 두드러졌다. 금호석유화학은 의료용·산업용 장갑 원료로 쓰이는 NB라텍스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타이어의 주원료료 사용되는 스티렌부타디엔고무(SBR), 부타디엔고무(BR)에서도 글로벌 1~2위권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다.

합성고무 부문은 원재료 가격 강세에 대응해 판매 단가를 적극적으로 인상하고, 고형 고무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전환하는 한편, NB라텍스 판매량을 늘리는 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합성고무 부문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9% 증가한 2조7953억원, 판매량은 16% 늘어난 134만2012톤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에도 호실적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정보제공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의 1분기 영업이익 가이던스는 전년 동기(786억원)과 유사한 762억원이지만, 일부 증권사들은 컨센서스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증권은 컨센서스를 18% 상회한 863억원, 하나증권은 15%를 상회하는 862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추정했다.

여기에 글로벌 통상환경 변화도 금호석유화학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의료용 장갑에 대해 최대 145%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중국산 NB라텍스 제품의 미국 수출길이 사실상 막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금호석유화학이 NB라텍스의 대부분을 수출하는 말레이시아의 경우 당초 24%의 상호 관세가 부과됐으나, 90일간 유예되며 현재는 10%의 관세만 적용된다. 금호석유화학은 말레이시아에 NB라텍스를 수출하고, 말레이시아 업체들은 NB라텍스로 의료용 고무장갑을 만들어 미국 등지로 수출하는 구조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중국 대상 의료용 고무장갑 관세는 2025년 50%, 및 2026년 100%로 적용 계획이다"며 "이에 따라 중국산 고무장갑 밸류체인은 미국 시장 공략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금호석유화학 입장에선 중국과의 경쟁을 피할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할 전망이다"고 내다봤다.

중국의 이구환신 정책의 수혜를 받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이구환신은 노후된 제품을 신제품으로 교체할 때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이다.

윤제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호석유화학은 중국 이구환신 정책과 연관된 가전·자동차와 관련된 화학제품인 고부사합성수지(ABS), SBR·BR, 페놀유도체 등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