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국내 증시의 입성은 까다롭게, 퇴출은 쉽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선 기업공개(IPO) 과정에서 기관투자자의 단기성 투자를 막을 계획이다.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기관투자자 자격을 강화하고 보호예수 기간을 늘려 장기투자를 유도한다. 주관사의 역할과 책임도 강화된다. 반면, 상향된 상장유지 요건을 만족하지 못하면 간소화된 절차로 단기간에 상장폐지 될 수 있다.
21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금융투자협회, 자본시장연구원 등 정부와 유관기관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를 개최하고 ‘IPO 제도개선 방안’과 ‘상장폐지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IPO·상장폐지 제도개선 방안’은 밸류업 정책의 연장선으로 추진됐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IPO 시장이 과도하게 단기차익 위주로 운용되고, 진입에 비해 퇴출이 원활하지 않아 자본시장의 효율적 기능과 신뢰가 저하되고 있다”며 “자본시장 밸류업 정책에 있어, 또 하나의 주요 과제인 IPO와 상장폐지 제도의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좀비기업은 불공정 거래의 온상이 되고 투자자의 신뢰를 훼손하는 주요 요인”이라며 “부실기업을 적시에 퇴출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 협회장은 “최근 국내 IPO 시장에 대해 부실 상장 논란이나 공모가 적정성 문제 등 투자자의 신뢰 저하와 불신이 제기되고 있다”며 “특정한 투자 주체나 회사의 문제로만 치부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신뢰 저하가 자본시장 전체로 확대되면, 결국 투자자는 국내 증시를 등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IPO 제도 개선: 기관투자자 단기 투자 제한
한국거래소는 IPO 시장이 ‘단기차익 목적 투자’에서 ‘기업가치 기반 투자’ 중심으로 합리화될 수 있도록 ▲기관투자자 의무보유 확약 확대 ▲수요예측 참여자격·방법 합리화 ▲주관사의 역할과 책임 강화를 중심으로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의무보유 확약 우선배정제도를 도입해, 오는 7월부터 기관투자자 배정물량 중 30% 이상을 확약한 기관투자자에게 우선배정을 실시한다. 이는 오는 2026년부터 40%로 상향된다. 또한 확약 물량이 40% 미만(2026년 이전 30%)일 경우 주관사가 공모물량의 1%를 취득(상한금액 30억원)하여 6개월간 보유하도록 한다. 이와 함께 의무보유 확약 최대 가점 기간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한다.
하이일드펀드, 코스닥벤처펀드 등 정책펀드의 경우 앞으로는 15일 이상의 최소 의무보유 확약을 한 물량에 대해서만 5~25% 별도배정 혜택을 제공받을 수 있다.
만약, 의무보유 확약을 위반하고 미청약·미납입 등을 행할 시 추후 수요예측 참여가 제한되고, 명확히 계량화된 감경기준을 적용받는 등 제재도 강화된다.
기업가치 평가 역량이 부족한 소규모 기관투자자의 수요예측 참여도 제한된다. 수요예측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관투자자는 고유재산뿐 아니라 운용재산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할 때도 총위탁재산 300억원 이상 혹은 등록 후 2년과 총위탁재산 50억원이라는 조건을 만족해야한다.
다만, 수요예측에 3개월 이상 의무보유를 확약하면 해당 요건은 면제된다. 또한 기존에 조성된 펀드·일임계약의 경우 올해 말까지 적용을 유예한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조치에도 수요예측 참여 과열이 계속될 시, 총위탁재산 기준의 상향조정 등을 추가로 검토할 예정이다.
재간접펀드, 해외 페이퍼컴퍼니 등 거래실적이 없고, 실체성 파악도 어려운 외국 기관투자자의 우회적 수요예측 참여도 제한한다.
수요예측의 초일 쏠림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초일 가점제도를 1~3일 차 1.5점, 4~5일 차 1점으로 완화한다.
IPO 주관사의 역할과 책임도 강화한다. 주관사가 수수료 극대화를 위한 IPO 흥행에만 힘쓰지 않고, 공모가를 합리적으로 산정하고 중장기 투자자 확보를 위해 노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또한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를 도입한다.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란 IPO 과정에서 증권신고서 제출 이전에 발행사와 주관사가 투자자를 미리 유치해 공모주 일부를 배정하는 제도다. 공모 주식 판매 전에 공모가격을 모르는 상태로 일정 금액을 장기투자(보호예수)하기로 약정하고, 그 대가로 공모주를 배정받는다.
코너스톤 투자자의 존재는 IPO 대상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이석훈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성 기관투자자의 참여가 주가폭락을 유도하고 있다”며 “연구 결과 기관투자자는 공모예정가가 다소 낮아 단기 수익이 기대될 때, IPO 수요예측에 대규모로 몰리고, 그렇지 않고 단기손실 가능성이 있을 때는 대폭 빠지는 특징이 있다. 기관투자자의 단기성 투자가 심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해외에서는 기관투자자의 특성에 맞게 공모주를 배정하고 있다”며 “국내에도 대규모 지분을 장기투자 하는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를 도입해 인증과 시장 안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상장폐지 제도 개선: 요건 강화와 절차 효율화
상장폐지 제도도 개정된다. 시가총액과 매출액 기준이 상향되는 등 요건이 강화되고, 상장폐지 심의·개선 기간 등을 축소해 절차를 효율화한다. 또한 상장폐지 후 비상장 주식거래를 지원하는 등 투자자보호를 보완할 예정이다.
코스피의 경우 최소 시가총액 요건이 내년부터 현행 50억원에서 200억원으로 상향된다. 이는 이후 2027년 300억원, 2028년 500억원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시가총액이 1000억원 미만이 경우 최소 매출액 요건도 내년까지 50억원으로 유지되다가, 2027년 100억원, 2028년 200억원, 2029년 300억원으로 높아진다.
코스닥의 경우 최소 시가총액 요건은 현행 40억원에서 2026년 150억원, 2027년 200억원, 2028년 300억원으로 강화된다. 시가총액이 600억원 미만인 경우 최소 매출액 요건도 2027년 50억원, 2028년 75억원, 2029년 100억원으로 높아진다.
감사의견 미달요건 기준도 강화된다. 현행 제도에서는 감사의견을 미달 받을 경우 다다음 사업연도 감사의견이 나올 때까지 개선기간을 부여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2회 연속 감사의견 미달 시 즉시 상장폐지 된다.
다만, 회생·워크아웃 기업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추가 개선기간을 허용한다.
코스피에서도 인적분할 후 신설법인을 상장할 때, 존속법인에 대한 상장폐지 심사제도를 도입한다.
상장폐지 심의 단계와 개선기간을 축소해 상장폐지 사유발생부터 최종 결정까지 소요기간도 축소한다.
코스피의 경우 심의단계는 형식(이의신청) 1심, 실질 2심으로 동일하게 유지하되, 개선기간은 형식(이의신청) 최대 1년, 실질 최대 2년으로 축소한다.
코스닥은 실질심사의 경우 심의단계를 3심에서 2심으로 줄이고, 개선기간도 최대 2년에서 1년 6개월로 줄인다.
또한 안건이 상정된 회의에서 결론이 나지 않아 다음 회의에서 계속하기로 한 속개 제도의 경우, 개선기간 추가부여 성격은 명시적으로 불허용하고, 1심 심의결과가 명확한 경우 2심에서는 추가 개선기간을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형식적 상장폐지 사유와 실질심사 사유가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 심사를 병행하여 진행하고 하나라도 먼저 상장폐지 결정이 나오면 최종 상장폐지에 나서기로 했다.
상장폐지 대상 기업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장폐지 심사 중 투자자에 대한 정보공시를 확대한다. 금융투자협회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 K-OTC에 상장폐지기업부(가칭)를 신설하고 6개월간 거래도 지원한다.
이상호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장 진입기준과 퇴출 기준을 완화한 상장 활성화 정책을 장기간 시행했다. 그 결과 부실기업의 퇴출이 지연되는 현상이 반복됐다. 현재 국내 증시는 해외 주요국 증시보다 상장기업이 더 많다. 상장기업이 많아 시가총액은 늘었지만, 개별기업의 주가는 낮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화 속 좀비가 전염성이 있듯, 기업 좀비도 정상기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게 학계 전반의 의견”이라며 “한계기업이 증가하면서 국내 증시 전반에 대한 투자매력이 저하됐다. 코스닥 시장에서 한계기업 문제로 지수상승에 상당한 제약이 있다는 것은 실증적으로 증명됐다. 거래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하고 투자자의 환금성도 제한되는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이 연구위원은 “기업의 회생 가능성도 중요하지만, 증시 경쟁력과 시장 신뢰도 강화가 훨씬 중요하다”며 “장기간 개선기간을 부여해도 결국 상장폐지 대상기업의 21%는 상장폐지됐다. 이들은 계속성이 회복되지도 않고 다시 한계기업에 직면했으며, 주가도 낮았다”며 “심사기간은 2.4년에 육박한다. 해외의 경우는 18개월 내 끝내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미현 한국거래소 상무는 “기술특례상장기업과 같은 기술기업, 성장성 기업의 경우 매출이 나오지 않더라도 코스닥의 경우 600억원 정도의 시가총액을 유지하면 상장폐지 대상기업에서 제외된다. 이런 기업에 대한 보완 방안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업들에게 획일적인 상장폐지 관련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은 다소 어렵다”며 “개선 계획이 기업 특성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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