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원 회장이 이끄는 HL홀딩스가 주주가치 제고 목적으로 취득한 자사주의 84%가량인 47만여주를 신설 재단에 무상으로 증여한다고 밝히면서 주주들이 강한 불만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HL홀딩스는 지난 11일 이사회 결의를 거쳐 현물로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56만720주 중 84%(총발행주식의 4.76%)에 해당하는 47만193주를 신설 재단법인에 무상으로 출연하기로 했다. 회사는 나머지 16%에 해당하는 자사주 9만527주만 소각할 예정이다.
HL홀딩스는 "사회적 책무를 실행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주주들은 이번 결정이 주주 가치를 훼손하고 대주주에 유리한 방식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자사주는 주주 모두의 재산으로, 소각할 경우 주식 가치가 상승해 모든 주주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하지만 이를 무상으로 재단에 넘기면 주주 재산권이 침해받고, 기존 주주들은 주식 가치를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의결권의 부활이다. 재단에 출연된 자사주는 의결권뿐 아니라 배당금도 새롭게 할당되며, 이는 사실상 무상 증자와 다를 바 없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HL홀딩스의 2대 주주인 VIP자산운용은 HL홀딩스의 자사주 재단 무상출연 발표 직후 우려를 담은 서신을 발송했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이사는 "자사주 출연 공시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며 "2대 주주로서 우려하는 바를 담아 HL홀딩스에 서신을 보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주주로서 (재단의) 의결권 행사 여부에 관계없이 자사주 무상출연은 당연히 철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밖에 각종 주식정보 사이트 종목게시판에도 HL홀딩스의 행태를 비판하는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HL홀딩스는 주주 반발이 거세지자 “재단에 출연된 지분의 의결권을 최소 5년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주주들은 이를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경영권 방어나 분쟁 상태도 아닌 상황에서 의결권 행사를 뒤로 미루겠다는 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이번 결정이 주주총회가 아닌 이사회 승인만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HL홀딩스 사례가 타 기업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자사주를 대량으로 매입한 뒤 비영리재단에 무상 출연하는 방식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거나 승계 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들이 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상법 개정이 미뤄진 상황에서 일부 기업들이 자사주를 활용한 비영리재단 설립으로 이사회를 장악하거나 지배구조를 강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KT&G 사례에서는 비영리재단에 출연된 자사주를 통해 경영진에 유리한 의결권 행사가 이루어진 전례가 있어, 이러한 방식이 악용될 수 있다는 합리적 우려가 나온다.
HL홀딩스 사례는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고 있다. 현재 상법은 기업 이사들에게 충실의무를 부과하지만, 그 대상이 '회사'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한정되어 있어 실제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기업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 20일 열린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일반투자자 간담회'에서 “경영구조와 지배권 남용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이사 충실의무를 주주 중심으로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은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며, 이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이 상법 개정의 핵심”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도 이날 논평을 내고 HL홀딩스의 자기주식 재단 출연은 최대주주의 지배권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와 투자자 이익보호를 중시하는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 전문가들은 일부 상장사들이 '사회 환원'이라는 명분으로 재단에 자사주 무상 증여라는 방법을 통해 우호 지분 확보를 꾀하는 것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을 한다"며 "자기주식은 소각하지 않으면 지배주주 지배권만 강화되고 일반주주는 전혀 혜택이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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