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에 경영권 분쟁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호반그룹이 한진칼 주식을 추가로 매입해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지분을 턱끝까지 추격하면서다.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다면 중요 변수는 산업은행의 달라진 입장이 될 전망이다. 현재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한 공적자금 회수를 완료해 대한항공 지분을 보유해야 하는 이유가 없다. 또한 보유 중인 HMM 지분 인수 후보자로 호반그룹이 유력해 호반그룹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1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호반과 호반호텔앤리조트는 지난 3월 11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총 294억원어치의 한진칼 주식 67만5974주를 장내매수했다. 이를 통해 호반건설과 특수관계자의 한진칼 지분은 기존 17.44%에서 18.46%로 1.02%포인트 늘었다.
호반그룹과 한진칼 최대주주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산업은행 제외 19.96%)의 지분 격차가 단 1%포인트 대로 좁혀진 것이다.
앞서 호반그룹은 지난 2022년 처음으로 한진칼 지분을 확보했다. 시세차익을 위한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으나, 고평가된 주가로 7000억원에 가까운 대규모 투자를 한 점과 과거 항공 사업 진출을 검토한 적이 있다는 점 등으로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대두됐다.
호반그룹은 지난 2022년 3월 KCGI로부터 한진칼 주식 총 1181만4917주를 6839억원에 매입하며 한진칼 지분 17.44%를 확보했다. 매입가는 주당 6만원 수준이다.
당시 호반그룹은 시세차익을 위한 ‘단순 투자’ 목적으로 한진칼 지분을 매입했다고 밝혔으나, 업계는 4년 연속 적자를 내던 한진칼 주식을 거품이 빠지지 않았다고 평가되는 가격으로 대량 매입한 데 의문을 표했다.
한진칼은 지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으며, 한진칼 주식은 2018년 11월 이전까지 1만~2만원 대에 거래되고 있었다. 이후 한진칼 주가는 KCGI와의 경영권 분쟁으로 2020년 4월 11만원 대로 치솟은 뒤 5만~6만원 대로 내려온 상태였으나, 여전히 고평가됐다는 시각이 많았다.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다면, 가장 큰 변수는 산업은행의 행보가 될 전망이다. 산업은행이 한진그룹의 손을 들어줄 유인이 사라지면서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우호지분으로는 본인과 특수관계인 지분 19.96% 외 델타항공(14.90%)과 산업은행(10.58%) 등이 꼽힌다.
앞서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과정에서 한진칼 지분을 확보했다.
지난 2019년 아시아나항공이 회계이슈 등으로 시장조달 악화에 놓이고, 2020년 코로나19로 여객수요까지 급감해 어려움을 겪자, 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등으로 구성된 채권단은 아시아나항공에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총 3조6000억원 규모의 정책자금 대출을 지원했다.
채권단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 결합을 통해 지원금 회수를 꾀했으며,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지난 2020년 한진칼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와 교환사채에 8000억원을 투입했다.
이 과정에서 산업은행은 한진칼 지분 10.66%를 갖게 됐으며, 이듬해 2021년 한진칼에서 KCGI와 조원태 회장의 경영권 분쟁이 일자 조 회장의 손을 들어주며 경영권을 안정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2월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했던 정책자금 3조 6000억원을 전액 회수하면서, 산업은행이 한진칼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여기에 산업은행이 보유 중인 HMM 지분 매각을 고려하고 있으며, 유력 인수자로 호반그룹이 떠오르며 호반그룹과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은 지난달 ‘넥스트라운드 인 실리콘밸리’ 행사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산업은행을 리스크 상황으로 내몰 수는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며 “HMM 지분 매각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업은행은 지분율 33.73%의 HMM 최대주주다. 문제는 HMM 지분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어, HMM의 주가에 따라 산업은행의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이 흔들리게 됐다는 것이다.
BIS 자기자본비율은 은행의 위험가중자산을 분모로, 자기자본을 분자로 둔다. 이때 HMM 지분 가치가 산업은행의 자기자본 15%를 초과하면, 15% 초과 지분에 위험가중치 1250%가 매겨져 분모가 커지며 BIS 자기자본비율이 하락하게 된다.
강 회장은 “HMM 주가가 1만8600원대를 넘어가면 이 가중치가 적용된다”고 말했으며, 전일(13일) 기준 HMM의 주가는 2만400원으로 이미 이를 넘어선 상태다.
산업은행의 HMM 지분 매각은 난항을 겪고 있다.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HMM 지분은 지난 2023년 57.9%였으나, 올해 4월 영구채의 주식전환으로 71.79%까지 올랐다. 이에 따라 HMM의 매각가도 두 배가량 뛰었다. 16조원에 달하는 HMM의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해당 지분의 가치는 11조 5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포스코와 현대차그룹 등은 HMM 인수전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은 상황이다.
이에 업계는 호반그룹을 유력한 HMM 인수 후보로 보고 있다. 과거 해운 업계에 진출을 시도한 이력이 있고, 11조원이 넘는 인수 자금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반그룹은 지난 2022년 중견 해운사인 폴라리스쉬핑 지분을 인수하며 해운업 진출을 시도했다.
또한 호반그룹의 유동자산은 호반건설 4조 1210억원, 호반산업 3조 4127억원 등이며, 지난해 기준 이익잉여금은 호반건설 3조5887억원, 호반산업 1조6660억원으로 이익도 준수하다.
한편, 호반그룹은 한진칼 지분투자에 대해 ‘단순 투자’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호반그룹 관계자는 “한진칼 지분 확보는 단순 투자 목적이 맞다”며 “추가로 지분을 매입할 것이란 이야기도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HMM 인수에 대해서는 따로 검토한 내용이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