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경영] 애자일(Agile)의 대명사 ‘대나무’-上

김종운(한국능률협회컨설팅) 승인 2022.03.22 10:41 의견 0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곧기는 뉘 식이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유연하고 빠른 나무
고산 윤선도 선생의 오우가에 나오는 구절이다. 대나무를 칭송하는 내용이다.

이 글에서도 나오듯 사람들은 흔히 대나무를 두고 나무이냐 풀이냐 하는 논쟁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나무와 풀을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땅 위의 줄기가 여러 해 동안 계속 굵기 성장을 하느냐 아니냐로 보면 된다. 나무는 여러 해 동안 자라지만 풀은 그렇지 않다. 이런 면에서 보면 대나무는 일 년간 성장을 다 하기 때문에 나무라고 보기 어렵다. 그렇지만 대나무를 풀이라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선 줄기가 풀이라고 하기엔 너무 굵고 단단하며, 잎이 겨울에도 떨어지지 않고 푸르름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대나무가 나무이건 풀이건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대나무는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에게 매우 이로운 나무였다는 점이다. 쓰임새가 많기 때문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대나무 줄기를 그대로 활용해서 낚싯대나 관악기 같은 것을 만들었다. 줄기를 가늘게 갈라서 엮으면 돗자리나 바구니, 조리 같은 것이 되기도 한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대나무 펄프는 고급 종이의 원료가 되기도 한다. 대나무의 어린 순은 죽순이라 해서 식용 재료로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대나무가 쓰임새가 많은 첫 번째 이유는 부드러움 때문이다. 몸체가 좀 크고 굵다 해도 불에 살짝 가열하면 구부려서 사용하기가 좋다. 다음 이유는 잘 갈라지기 때문이다. 칼로 살짝 칼집을 내면 한 번에 쫙 갈라진다. 이렇게 갈라진 대나무 살은 여러 가지 공예품을 만드는 데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식생활에도 다양한 쓰임새가 있다. 죽순의 쓰임새는 이미 말했고, 대나무 큰 마디를 이용해 대통 밥을 짓기도 하고 떡을 찌거나 할 때 댓잎을 깔아 쓰기도 했다. 이렇듯 대나무만큼 다양한 모양과 용도로 활용되고 변신이 가능한 나무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자람은 또 어떠한가? 우후죽순이란 말이 있다. 봄날 비 온 뒤에 대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실제 대나무가 자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할 정도로 대나무는 대단한 속도를 보인다고 한다. 한 나무가 자라는 것도 그렇지만 군집으로 자라는 속도도 대단하다. 대나무는 지하경이라고 해서 땅속줄기로 번식을 하는데 집 근처에 자리를 잡으면 너무 빨리 자라 집을 파고들 정도라는 말도 있다. 이러니 대나무는 실로 대단한 유연성과 민첩성(Agility)을 가진 나무라 부를 수 있다.

▲노키아의 몰락과 삼성·애플의 부상

기업을 경영함에 있어서도 유연성과 민첩성은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말해진다. 특히, 최근과 같이 경영 환경이 매우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는 기업이 유연성과 민첩성을 가지지 못하면 자칫 한 순간에 도태되기 십상이다.

2013년 9월, 세상을 놀라게 한 기업인수가 있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노키아 인수가 그것이다. 노키아는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던 기업이다. 2G 휴대폰 시장에서 노키아는 세계 시장의 40% 이상 점유율을 보이며,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대 강자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키아도 모바일 시대에 대한 판단이 늦어지면서 결국 삼성전자와 애플에게 왕좌 자리를 내줌은 물론 회사의 주력인 휴대폰 사업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겨주는 아픔을 겪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노키아는 1865년 제지 회사로 출발했다. 이후 케이블 회사와 고무 회사를 합병하면서 전자 회사로 변신했고, 휴대전화 제조 회사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유연성으로 치자면 매우 우수한 사례로 얘기할 수 있는 회사였다. 기존 핵심 사업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고 그것을 수용해 나가면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 왔다는 점에서 노키아의 유연성을 높이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2G 휴대폰의 성공에 안주하면서 오히려 민첩성이 더욱 요구되는 최근의 경영 환경에서 민첩성을 보이지 못한 것이 결국 150년의 화려한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된 것이다.

1995년 골드먼, 나겔, 프라이스는 민첩성 경영(Agile Competition)을 말하면서 민첩기업의 4가지 특성을 제시했다.

첫째, 제품이 아닌 해결을 판매함으로써 고객을 윤택하게 한다. 고객이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으로 고객과 우호적인 신뢰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고객과 하나가 되어 고객의 문제 해결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타사와 협력한다. 기업의 경영 자원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단일 기업만으로는 민첩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독립된 기업끼리 어떤 목적을 위해서 경영 자원을 서로 제휴하고 협력하는 이른 바 가상 조직(Virtual Organization)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셋째, 변화와 불확실성에 대한 시스템을 내부에 만든다.

대부분의 기업 조직에서는 상사가 부하에게 지시하고 부하는 그 지시를 따르는 형태로 되어 있다. 그런데 만약 현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항상 이런 형태로 일이 진행된다면 그리 효율적인 조직이라 할 수 없다. 이런 경우 권한을 현장으로 분산시켜 의사 결정을 빠르게 진행시키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또한 이런 환경에서 직원들은 더욱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등 보다 능동적인 조직 문화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넷째, 인재와 정보를 최대한 활용한다. 인재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고, 특히 최근에는 빅데이터를 포함해 정보의 활용이 매우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다. 다양하게 확보된 정보를 활용하여 신제품의 개발은 물론 마케팅에 활용하기도 하고, 심지어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까지 정보의 활용 영역은 날로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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