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는 주가로 말한다] '지쳐가는 구원투수' 이정애 LG생건 대표

'中 애국주의' 소비 여전...젊은층 49%, 애국소비 지지
시총 줄곧 내리막...3년 전의 1/6 수준까지 쪼그라 들어
지난해 중국 화장품 브랜드가 해외 브랜드 매출 넘어
이 대표, 회사 주식 1000주 매입…책임 경영 의지
최저가 납품 요구로 갈등하던 쿠팡과 5년 만에 합의

김나경 승인 2024.02.21 17:02 의견 0

LG생활건강의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동기대비 57.6% 감소한 547억원으로 집계됐다. 의존도가 높았던 중국에서 경기 침체가 지속되고, 중국 젊은 층 사이에서 자국 브랜드를 선호하는 ‘애국주의 소비’가 유행하면서다.

차석용 전 LG생활건강 부회장이 실적 부진 등에 책임을 지고 17년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맞이한 첫 여성 CEO지만, LG생활건강은 긴 부진의 좀처럼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다.

주가는 1년여 동안 하락을 거듭해 반토막 났으며 이달 초에는 52주 최저가(30만원)를 기록했다.

LG생활건강 주가는 이정애 대표가 취임한 지난해 3월 28일 58만8000원에서 이달 20일 34만원으로 42.18% 하락했다. 같은 기간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13만2300원에서 12만6900원으로 4.08% 하락했다.

LG생활건강은 지난해 연결기준 잠정 매출 6조8048억원, 영업이익 4870억원을 기록했다. 직전연도 대비 매출은 5.3%, 영업이익은 31.5% 줄어든 규모다. 같은 기간 순이익도 36.7% 감소한 1635억원에 그쳤다.

영위 중인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 등 주요 사업부문 중에서도 화장품의 실적이 가장 부진했다.

과거 화장품은 LG생활건강 전체 매출의 절반을 담당했다. 그중에서도 중국 매출(면세 포함)은 화장품 매출의 약 46%를 차지했다.

하지만 중국 시장에서 한국의 고가 화장품을 에스티로더 등 유럽과 미국 브랜드가 대체하고, 중저가 화장품은 프로야 등 중국 로컬 브랜드가 선호되면서 한국 화장품의 입지가 흔들렸다.

코로나19 시기 중국의 제로코로나 기조 및 지역봉쇄 등으로 줄어들었던 매출은 최근 중국 젊은 층의 ‘애국주의 소비’에 밀려 더욱 감소하는 모습이다.

중국시장 조사기관 아이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 젊은 층의 49.6%가 애국소비(궈차오)를 지지한다고 답했으며, 유로모니터는 지난해 중국 현지 화장품 브랜드가 중국 내에서 처음으로 디올, 로레알파리 등 해외브랜드 매출을 뛰어넘었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최근 중국의 실업률 증가, 부동산 침체 등으로 중국 내 소비 자체가 위축된 모습이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최대 쇼핑행사인 ‘광군제’(11월11일)가 포함된 지난해 4분기 실적이 오히려 감소했으며, 중국 내 1~2위 온라인 쇼핑기업 역시 2년 연속 구체적인 광군제 매출 액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중국 외 해외 시장을 공략하며 재도약을 꾀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스킨케어 브랜드 '후'에 대한 리브랜딩에 나섰고, 일본 시장은 중저가 색조 브랜드를 중심으로 진출해 마케팅을 강화했다. 미국에서는 방문판매 중심이었던 에이본 사업을 효율화하고 멀티브랜드숍 채널 위주로 중저가 브랜드인 '더페이스샵'과 '빌리프'의 진출을 확대할 예정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당분간 실적이 개선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DB금융투자는 LG생활건강에 대한 투자의견을 기존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다. 한국투자증권, 이베스트투자증권도 투자의견 '중립'을 유지했다. 상상인증권은 투자의견은 '매수'로 유지했으나 목표주가를 55만원에서 49만원으로 낮췄다.

허제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이 과정에서 비용이 늘어나며 수익성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체질 개선 효과가 가시화될 때까지 주가 흐름을 부진할 것"이라며 말했다.

이정애 대표는 지난해 3월 LG생활건강의 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17년간 지속적인 매출 경신 신화를 이룬 차석용 전 대표가 코로나19로 인한 실적 부진으로 퇴임하면서다.

국내 첫 여성 전문경영인으로 LG생활건강의 실적을 개선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경영 첫해인 지난해에는 직전연도 대비 영업이익이 31.5% 감소하며 실적 방어에 실패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5.3%, 순이익은 36.7% 감소했다.

이 대표는 지난 5일 LG생활건강 주식 1000주를 매입하며 주가 방어에 나서 책임 경영 의지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브랜드별, 유통채널별로 각각 운영되던 멤버십 포인트 제도를 개편해 오는 2025년 통합 멤버십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지난 2008년부터 통합 멤버십을 운영 중인 아모레퍼시픽에 비해 늦은 감이 있다는 평가다.

지난달 최저가 납품 요구로 갈등하던 쿠팡과도 4년 9개월 만에 손을 잡았다.

최근 소비자와 납품업체의 ‘탈(脫)쿠팡’ 움직임에 쿠팡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한 결정 취소 행정소송 판결 선고 일주일 전에 합의에 나선 것이다.

이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실적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그는 신년사에서 “2024년은 LG생활건강이 2년간의 부진을 털어내고 새롭게 성장하는 변곡점의 한 해가 돼야 한다”며 “미래에 대한 투자 없이 단순히 내핍(참고 견딤)에만 의존해서 만들어 내는 단기 성과가 아니라 미래 준비를 지속하면서 사업 성과의 '방향'을 상승하는 쪽으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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