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시론] 60%의 상속세, 이젠 손볼 때가 됐다

천문학적 규모 상속세 아끼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탈세의 유혹'에 빠지다 보면 주주가치 훼손할 수도
60%에 육박하는 상속세...파이를 키울 사람이 없다
경영활동에 집중할 수 있게 글로벌 수준으로 낮춰야

주주시론 승인 2023.06.08 16:57 | 최종 수정 2023.06.08 17:09 의견 0

얼마 전 연봉 10억원을 제시했는데도 전문의를 구하지 못 하고 있다는 한 지방병원에 관한 기사가 세간에 화제가 됐다.

굴지 대기업에도 연봉 10억원 임원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평범한 월급쟁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갈 금액이다. 그런데도 사람을 구할 수 없다니 놀라운게 사실이다.

하지만 연봉이 10억원이라도 세금과 4대 보험을 떼고 나면 실수령액은 연간 5억5000만원 정도다.

비현실적 가정이지만 그렇게 20년을 한푼도 안 쓰고 모아서 가족에게 이를 증여한다 해보자.

증여재산 110억원에 대해 44억원 가량의 증여세가 부과된다. 남는 돈은 66억원이다. 병원이 그 의사에게 지급한 돈은 200억원이지만 정작 가족들 손에 쥐는 돈은 그 정도란 얘기다.

총수입의 3분의 2를 국가가 걷어가는 구조다 보니 인생을 갈아넣을 엄두가 안 날 법도 하다.

최근 회자되는 또 하나의 뉴스는 김정주 넥슨 창업자 유족의 상속세 물납 소식이다.

지난해 2월 별세한 김 창업자의 유산은 10조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이 내야 하는 상속세는 6조원대로 추산된다.

기본 상속세율 50%에 최대주주 할증(20%)까지 붙으면서 상속세율이 60%에 달했다. 유족은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넥슨의 지주사이자 비상장사인 NXC 지분 30% 가량을 상속세로 물납했다.

뜬금없이 기획재정부가 NXC의 2대 주주가 된 이유다. 기재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위탁해 해당 지분의 매각을 진행할 예정이다. 다행히 NXC는 일반 주주가 없어 여파가 없었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삼성SDS다. 삼성 오너 일가가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원에 이른다. 5년에 걸쳐 분납 중인데 이로 인해 오너 일가 지분이 높은 삼성SDS는 오버행 이슈에 시달려 왔다.

피해는 고스란히 SDS주주가 입었다. 5년 전 20조원에 이르던 삼성SDS 시총은 현재 10조원 아래로 내려왔다. 그 과정에서 실제 오너 일가가 SDS 지분을 블록딜로 처분하기도 했다.

한국의 높은 상속세가 논란이 된지도 수 십 년이 흘렀다. OECD 국가 중 명목세율 기준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높은 상속세가 세수에 도움이 되기야 하겠지만 창업이나 가업 승계의 의지를 꺾는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상속가액이 100억원을 넘어가면 사실상 명목세율을 적용받는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세율이었는지 모르나 성장 동력이 꺾인 지금, 누가 저 높은 상속세율을 감당하며 사업에 도전할지 의문이다. 파이를 키우려는 이들은 사라지고 빨대를 꼽으려는 이들만 늘어난다.

더 큰 문제는 천문학적 상속세를 피하려다 보니 기업 총수들이 탈세의 유혹을 떨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상속·증여 시점에 맞춰 주가를 억지로 누르거나 비상장 계열사를 탈세 창구로 이용하고 싶어한다.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당연하다.

"건실한 기업의 대표들을 자주 만나는데, 상속 증여 이슈가 걸려 있는 이들은 주가가 오르는 걸 탐탁치 않게 생각합니다"

매달 10개 가량의 투자기업을 탐방한다는 한 중소형 자산운용사 대표의 말이다.

기업 오너가의 윤리의식을 나무라며 훈장질을 하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그들이 경영 활동에 매진해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도록 숨통을 터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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