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 열풍...재계 10위 대기업은 안전할까

고려아연 사태로 제2의 고려아연 찾기 활발
대주주 지배력 취약·시총 작은 주요 10대 지주사 타깃 우려
"M&A 국내 지배구조 개선위해 필요", "차등의결권 도입해야"

박소연 승인 2024.10.17 10:04 의견 0

고려아연 사태를 필두로 사모펀드(PEF) 운용사 주도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제2의 고려아연을 찾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재계 10위 주요 지주사 또한 적대적 M&A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는 MBK파트너스(이하 MBK)·영풍이 공개매수를 통해 고려아연 지분 5.34%를 확보했다.

이번 공개매수를 통해 MBK·영풍이 경영권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현재 고려아연의 지분 구조는 △MBK·영풍 38.47% △최윤범 회장 및 우호지분 33.9% △국민연금 7.83% △자사주 2.4% △기타주주(17.4%)로 이뤄진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적대적 M&A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PEF 운용사 주도의 적대적 M&A로 상장사 경영권을 탈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적대적 M&A는 인수하려는 기업이 대상 기업의 경영진의 동의나 협조 없이 강제로 인수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을 말한다. 주로 공개 시장에서 주식을 매입하거나 주주에게 직접 제안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증권가와 개인투자자들은 제2의 고려아연 찾기에 돌입했다. MBK·영풍과 고려아연 양측이 공개매수 경쟁을 벌이면서 영풍과 고려아연의 주가는 한 달 새 50% 안팎의 상승률을 보였다.

NH투자증권은 1대 주주와 2대 주주 간 지분율 격차가 20%포인트 미만인 상장사 34개를 리스트로 만들어 공개했다. 이 중 격차가 3%포인트 이내인 기업도 엔씨소프트, 금호석유, 한솔케미칼, DB 등 11개에 달한다.

고려아연 사태는 PEF가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 지분 확보에 나서면 기업이 방어하기 쉽지 않다는 사례를 보여줬다. 특히 승계와 상속 과정을 거치며 대주주의 지배력이 약해진 재계 주요 지주사들도 적대적 M&A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주요 지주사들의 시가총액이 작은 점도 약점으로 꼽힌다. 주식 시장에서 해당 기업의 주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많이 매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일 기준 재계 순위 6위에 해당하는 롯데그룹의 지주사 롯데지주와 7위인 한화그룹의 지주사 한화의 시총은 각각 2조5283억원, 2조1101억원에 불과했다. 이는 MBK·영풍이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위해 투입한 약 2조5141억원과 맞먹는다.

재계 1위 삼성그룹과 3위인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갖추고 있다. 삼성물산과 현대모비스는 그룹의 지주사격이다. 순환출자 구조는 적대적 M&A에 대해 상황에 따라 취약할 수도 있고, 방어에 유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지분율이 낮아 적대적 인수자가 특정 계열사를 인수해 전체 그룹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취약성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룹 내 계열사들이 서로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외부 인수자에 맞서 그룹 차원의 방어를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일 주주가 15% 이상 지분을 가지고 있으면 M&A 위험에 노출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재계 10대 지배주주들은 대부분 20% 이상 지분을 보유 중이다"고 평가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모펀드의 적대적 M&A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선 우호 세력을 포함해서 지분율 51%가 넘어야 안전하게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이 55%에 달한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우리나라 모든 대기업이 차등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적대적 M&A에 노출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내다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적대적 M&A의 필요성과 더불어 기업의 경영권 보호 방안으로 차등의결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창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M&A에 대해 적대적이라는 단어로 프레임을 만드는 것 같은데 일종의 규율형 M&A라고 한다"며 "M&A는 경영권 또는 지배권을 위한 건전한 경쟁으로, 한국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M&A가 필요한 단계다. 미국도 M&A 시장이 활성화되면서부터 지배구조가 개선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대종 교수는 "기업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여유자금을 활용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 시장과 같은 수준으로 적대적 M&A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은 차등의결권, 황금낙하산 (​경영진이 해임될 경우 막대한 퇴직금이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계약을 맺는 방어책) 등 여러 가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창업자와 일반 주주 동일하게 1대1의 의결권을 인정해 주지만, 미국에서는 창업자에 대해 10배의 의결권을 인정해준다. 정부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해줘야 기업들이 경영에 대한 위협에 대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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