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가 ‘코리아 밸류업 지수’ 100종목을 발표했다. 선정 기준은 ‘상대평가’로 이뤄졌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가 배제돼 투자자 보호가 되지 않는 우리나라 증권 시장에서, 대주주의 일반주주 수탈은 빈번히 일어났다. 그러한 회사들 가운데 그나마 나은 기업을 뽑다 보니 해당 종목 주주조차 이 기업이 왜 지수에 포함됐는지 모르겠다는 의문을 표한다.
한국거래소가 24일 ‘코리아 밸류업 지수’ 구성종목 100종목 및 선정기준을 발표했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오는 30일 도입되며, 11월에는 이를 활용한 상장지수펀드(ETF)도 출시된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거래소가 나름대로 우리나라 상장사 가운데 기업 가치가 우수하다고 판단한 회사를 선별해 구성한 지수다. 우수 기업의 가치가 저평가되고 있으니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투자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지수에 들어오지 못한 기업들이 지수에 편입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효과도 노렸다.
선정 기준은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 400위 이내 ▲최근 2년 합산 및 연속 흑자 ▲2년 연속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 실시 ▲최근 2년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 산업군별 상위 50% 이내 혹은 전체 상위 50% 이내 ▲최근 2년 평균 자기자본이익률(ROE) 산업군 상위 등이다.
한마디로 무리 중 그나마 나은 곳을 뽑는 ‘상대평가’ 방식이다.
지난 20일 학계와 기업계, 투자업계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모여 밸류업 성과를 중간 평가하는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당시 발표자들은 모두 우수사례로 메리츠금융지주를 꼽았다. 그러면서 “본인도 우연치 않게 메리츠금융지주 사례를 중복해서 가져오게 됐다. 우리나라에 밸류업 우수 사례가 메리츠금융지주 하나여서 그런 것 같다. 우수생이 1명밖에 없어 이 우수생만 계속 언급되는 상황”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거래소가 2400여 개에 이르는 상장사 중 그나마 낫다는 100종목을 추려냈지만, 투자자들은 해당 종목들이 우수한 종목이라는 데 고개를 갸웃거린다.
100종목 가운데 79개 종목의 배당수익률이 은행 이자인 3.5%보다 낮다.
그렇다고 주가가 좋은 것도 아니다. 시가총액이 회사의 순자산 수준도 되지 않는 PBR 1배 미만 기업이 28곳이며, PBR 1배 수준인 기업은 41곳이다.
뽑힌 종목들의 과거 행적을 보면 신뢰도는 더욱 떨어진다.
구체적으로 현대차는 실적으로는 글로벌 1위 기업 토요타 자동차를 바짝 추격하고 있으나, 순환출자구조로 지배주주가 불투명하고 승계 이슈가 있어 투자자들이 꺼리는 종목이다.
두산그룹은 지난달 그룹 내 최고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에 흡수합병하는 지배구조개편을 추진했으나 당국과 투자자, 학계 등으로부터 크게 질타를 받고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 지분을 깔끔하게 공개매수하는 게 아닌, 회사를 쪼개고 주식을 최근 주가 만을 기준으로 이리저리 교환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이러한 방법으로 두산은 최소한의 자금으로 두산밥캣에 대한 본인의 유효 지배력을 기존 14%에서 42%로 대폭 늘릴 예정이었다.
골프존그룹의 지주사인 골프존뉴딘홀딩스는 매출액이 매년 배로 늘고 있음에도 주가가 오르지 않았다. 이에 투자자들은 1946년생으로 고령인 김영찬 회장이 승계를 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누르고 있다고 의심한다.
DB하이텍은 지난해 3월 주요사업부인 팹리스(반도체 설계)를 ‘DB글로벌칩’으로 물적분할 해 투자자들과 분쟁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참 열심히 일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기업들의 실적은 글로벌 수준이다.
하지만 기업이 돈을 아무리 잘 벌어도, 주주에게 번 돈을 나누지 않거나 주가 부양에 관심이 없으면 주주로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주주가 상장사의 주식을 사는 이유는 투자 수익을 얻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상장사 대부분은 대주주가 있다.
이들 대주주는 승계 과정에서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 주가 부양을 등한시하거나, 최소한의 자본으로 지분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열사들을 이리저리 합병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언제나 논란이 되는 합병비율은 보너스다.
이렇게 해도 이사회 이사들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이 단지 ‘회사’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대법원은 2009년 삼성 불법 승계 의혹 관련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 사건 판례에서 “이사는 ‘주주’에 충실할 의무가 없다”고 못 박았다.
투자자에 대한 보호가 없는 한국 증시에 투자금이 들어올 리가 없다. 한국 증시가 고질적인 저평가에 놓인 이유다.
이사의 충실 의무에 ‘모든 주주’를 포함 시키는 등 상법개정을 통해 곪은 부위를 도려내는 게 아닌, 비슷한 회사들 가운데 그나마 나은 곳을 지수로 편성해 대외적으로 홍보하는 게 밸류업에 도움이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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