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투자증권 리포트에 97년 11월 IMF가 작성한 보고서가 실려 눈길을 끈다.

당시 한국이 맞닥뜨린 금융위기가 후진적인 기업 지배구조에 기인한다는 IMF의 분석을 소개하기 위해서인데 27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 기업의 지배구조가 여전히 이를 탈피하지 못 하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화투자증권 박세연 연구원은 31일 '세제개편안과 밸류업' 보고서를 통해 "밸류업 실효적인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갈 길이 멀지만 정부가 밸류업 통한 증시 부양 의지가 크다는 점은 다행"이라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서 박 연구원은 "이번 세제 개편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더라도 상속세 절세 혜택에 집중된 대상은 중견기업(매출액 5천억원 미만)이며, 세제개편이 밸류업에 얼마큼 큰영향을 미칠지 지켜보아야 할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세제개편 외에도 갈길이 멀지만 지배구조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리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대표적인 문제로 재벌의 지배구조 행태를 꼽는다"고 소개했다.

박 연구원은 그러면서 'IMF, 한국경제 극비 보고서'라는 문서를 실으며 "외환위기 이후 IMF가 우리나라에 권고했던 사안 중 하나가 지배구조 개선이다. 그 외 회계 투명성과 효율적 자본 배분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몇몇 기업에서는 지배구조 및 주주권익 침해 사례, 밸류킬이 발발하고 있다. 정부가 밸류업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저PBR 종목을 상폐하거나 헐값으로 합병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밸류킬은 최근 신성통상 등이 상장폐지를 추진하는 것을 밸류업에 빗대어 지적한 것이다.

그는 이어 "단골 이슈는 터널링(tunnelling), 프로핑(propping), 모자회사 중복상장 등"이라고 덧붙였다.

터널링은 지배주주가 자녀 명의로 자회사를 세워 일감을 몰아주는 편법 증여로 계열사 지배력을 강화하여 2,3세가 쉽게 부를 축적하는 것을 말한다. 재벌가에서는 쉼없이 일어났던 일이다.

내부거래는 주로 부동산 관리회사, 물류, IT 시스템, 건설사 분야에서 많이 나타난다. 이 자체로는 문제가 없지만 계열사간 일감 몰아주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빈번하다. 계열사 주주 입장에선 당연히 손해다.

프로핑은 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부실 계열사 구조조정을 하거나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SK가 SK이노베이션과 SK E&S를 합병, SK와 SK E&S의 자금으로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온을 지원하는 것이 최신 사례다.

모자회사 중복상장은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이 대표적 케이스다.

박 연구원은 "대주주의 사익편취 행위를 제도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주주의 비례적 이익과 이사 충실 의무에 대한 상법 개정 등이 추진되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 방향은 명확하지만, 어디까지 제도적으로 타협이 가능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