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서 행동주의 저지하자'...진화하는 기업들의 꼼수

주총 주주제안은 6주 전이지만 기업 공시는 2주 전
주주제안 미리 받고 안건 변경 등 대응 나서기도
HFR, 상법 위반한 깜깜이 표결 의혹도

김나경 승인 2024.04.10 10:42 의견 0
금호석유화학이 지난달 22일 서울시 중구 시그니쳐타워에서 제47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백종훈 대표이사 사장이 인사말을 하는 모습. (사진=금호석유화학)

2024년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을 부결시키기 위한 기업의 꼼수가 이어졌다. 주주제안을 통한 이사회 입성을 막기 위해 이사회 구성을 고무줄처럼 늘리거나 줄였으며, 회사가 임의로 주주제안을 해석하거나 상법을 위반 의혹을 받는 사례도 나왔다.

9일 한국ESG연구소(KRESG)에 따르면 올해 정기주총 시즌 분석 대상 기업 689개 사가 상정한 안건 4528개 가운데 주주제안은 작년(72개)보다 27.78%가량 줄어든 52개였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주총 시즌 대부분의 주주제안이 부결되자 행동주의펀드 및 소액주주연대 등이 주주제안 전략을 다양화했다.

이에 맞서 상장사들 역시 주주제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기업이 주주제안을 미리 받아본 뒤 안건 변경 등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상법상 주주는 주총일 6주 전에 주주제안을 마쳐야 하지만, 기업은 2주 전까지만 주총 공시를 내면 돼 대응할 만한 시간이 충분한 편이다.

◆ 주주제안과 이사회 안은 ‘양립 불가능’ 명시

금호석유화학은 지난달 22일 제47기 정기주총에서 행동주의펀드 차파트너스자산운용(차파트너스)의 주주제안 안건을 모두 부결 또는 자동폐기 시켰다.

앞서 박찬구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전 상무는 차파트너스를 특별관계자로 추가하고 의결권을 위임하며 힘을 합쳤다. 이들이 제안한 안건은 △김경호 감사 후보 선임과 △기 보유 자사주 소각 △소각을 위한 정관 변경 등이다.

이에 금호석유화학은 가결될 수 있는 안건 수를 한정시키고 이사회 제안을 선제적으로 가결하여 후속 안건인 주주제안을 폐기하는 꼼수를 부렸다.

회사는 ‘제2호 의안: 정관 일부 변경의 건’에 이사회 안인 ‘제2-1호 의안: 자기주식 처분, 소각’을 먼저 상정한 뒤 차파트너스의 ‘제2-2호 의안: 자기주식 소각’을 상정했다.

이와 함께 ‘제2-1호 의안과 제 2-2호 의안은 택일적이고 양립불가능하므로(두 의안 중 하나만 찬성하시기 바랍니다), 두 의안 중 하나가 가결되는 경우 나머지는 자동으로 폐기된다’고 명시했다.

그 결과 주총장에서 이사회 안인 ‘제2-1호 의안’이 가결되자 주주제안인 ‘제2-2호 의안’은 자동 부결됐으며, ‘제3호 의안: 자기주식소각의 건(2025년 말까지 기 보유 자사주 전량 소각)’까지 자동폐기됐다.

이에 차파트너스는 “자사주 소각에 관한 주주제안 내용이 이사회의 관련 결의를 제한하는 조항이 아님에도 사측이 차파트너스 주주제안과 이사회 안을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공고해 주주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달 6일 이사회를 열고 기 보유 자사주 절반만 2026년까지 3년간 분할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 이사회 구성 고무줄 전략

투표에 부치는 이사회 구성이 주주제안 이사 후보를 한 명이라도 덜 입성시키는 방향으로 고무줄처럼 늘거나 줄기도 하였다.

DB하이텍은 행동주의펀드 KCGI와 소액주주연대가 감사위원회 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를 각각 1명씩 주주제안 하자 이사 수를 제한하는 정관변경을 통해 둘 중 한 명만 가결될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려 했다.

회사는 지난달 28일 제71기 정기주총에서 이사의 수를 기존 ‘4인 이상’에서 ‘4인 이상 8인 이하’로 변경해 이사의 수에 상한을 두는 정관 변경안을 상정했다.

당시 DB하이텍은 기존 이사회 멤버 6명 중 임기가 만료되는 1명을 재선임하고, 이상기 기술개발실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을 상정해 주주제안 안건 앞에 위치시켰다.

이사회 안이 모두 통과되면 이사회 멤버는 7명이 차, 정관상 남는 나머지 한자리를 놓고 주주제안 감사위원 후보 2명(KCGI 추천 윤영목, 소액주주연대 추천 한승엽)이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다만, 정관 변경은 특별결의 사항으로 최대주주인 DB Inc.와 특수관계인(2023년 12월 말 기준 지분 17.82%)도 가결시키기 쉽지 않았다.

‘제2-2호: 정관 일부 변경(이사의 수 조정)의 건’ 찬성률은 60.67%로 출석주주 3분의 2 요건을 미충족해 부결됐다.

JB금융지주는 지난달 28일 제11기 정기주총에서 집중투표제 선임 이사의 수를 줄이기 위해 집중투표가 적용되지 않는 ‘제4호 의안: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선임의 건’ 정원을 기존 1명에서 4명으로 대폭 늘렸다.

지분율 14.04%의 2대주주인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얼라인)은 주주제안을 통해 △비상임이사를 2인으로 증원하는 건 △비상임이사 후보자 이남우 △사외이사 후보자 김기석 △감사위원이 되는 사외이사 후보자 백준승·김동환 안건을 상정했다.

이날 주주제안 후보인 김기석 사외이사 후보가 가결됨에 따라 국내 금융지주 최초로 주주제안 이사가 탄생했다. 얼라인은 이사회가 추천을 받아들여 후보에 올린 이희승 사외이사와 주주제안으로 직접 상정한 김기석 사외이사 등 총 2명의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입성시켰다.

◆ 회사 마음대로 주주제안 해석: 주주제안 본질은?

회사가 임의로 주주제안을 해석해 주주제안의 본질을 해친 사례도 있었다.

DMS는 제25기 정기주총 배당에 관한 처리안으로 ‘제1-1호 의안 : 제25기 연결 및 별도 재무제표 승인의 건(배당금 1주당 90원)’과 ‘제1-2호 의안 : 현금배당 주당 당기순이익의 30% 승인의 건(주주제안)’을 상정했다.

문제는 소액주주연대가 순이익의 30%를 배당하라고 제안하자 회사가 연결기준으로 적혀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단적으로 별도기준으로 배당금을 산정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결기준 보통주 1주당 405원의 배당금이 별도기준으로는 보통주 1주당 136원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에 소액주주연대는 항의와 금융감독원 고발 조치 등을 통해 정확한 주주제안의 의미를 전달했으나, 회사는 안건을 수정하지 않았다.

DMS는 감사 수를 기존 2인 이내에서 1명으로 제한하는 ‘제2-1호 의안 : 정관 일부 변경(감사의 수)의 건’을 가결시켜 올해 정기주총에서 결정된 감사 외 다른 감사는 향후 3년간 선임되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이번 주총에서 선임된 감사는 이사회 추천 후보였던 강성윤 감사다.

◆ 이사인 주주가 셀프 보수한도 결의…상법 위반 의혹

상법을 위반 의혹에 따라 법정 다툼으로 번진 정기주총도 나왔다.

HFR은 지난달 29일 제9기 정기주총에서 ‘제4호 의안: 이사보수한도 승인의 건’과 제 9-1호 의안 : 대표이사 보수한도에 대한 주주총회 안건 상정 여부의 건’ 표결 과정에서 특별이해관계자인 정종민 대표이사의 의결권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는다.

임원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걸린 안건에도 의결권을 행사했지만, 회사가 깜깜이로 넘어가 가결시켰다다는 것이다.

상법 제368조 3항은 총회의 결의에 관하여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자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회사는 소액주주연대의 의결권을 5% 공시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한하기도 했다.

이에 소액주주연대는 “회사가 5% 공시 위반의 근거로 삼은 것은 ‘의결권 권유행사 공시’에서 연대가 플랫폼에 몇 프로를 모았다는 표현 하나다. 과거 하급심 판례나 법리에 비춰볼 때, 법원 쟁송으로 가면 위와 같은 주장은 배척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대는 해당 안건을 가결한 주총결의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동시에 해당 주총에 대한 취소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일부 상장사는 주주제안 준비 과정부터 소액주주연대와 줄다리기를 했다.

주주명부 열람·등사 가처분 승인에도 주주명부를 최대한 늦게 전달하거나, 엑셀이 아닌 종이에 글씨 크기를 작게 출력해 스캔이 어렵게 만드는 등으로 연대의 결집을 최소화하려 한 것이다.

한국ESG연구소는 “주주제안과 관련해서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존중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특히 임시주주총회 개최 시에도 주주가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기간(상법 제363조의 2, 42일)이 확보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Value up) 정책이 성공적으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주주권이 보다 존중받는 주주총회의 Value up 정책(법제도 포함) 수립이 선결되어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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