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와는 사업구조 다른데...정유사 상대 횡재세 부과 '논란'

국내 정유 4사 올해 2분기만 6조원 가량 영업이익 기록
정치권 중심으로 횡재세 도입 및 특별기금 출연 주장나와
영국·헝가리·스페인 횡재세 부과...증가 세수로 저소득층 지원
국내 정유업계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 등 신사업 위한 재원"

박소연 승인 2022.08.05 15:45 | 최종 수정 2022.08.05 16:15 의견 0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정유업계를 대상으로 초과 이익을 환수하는 '횡재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유업계는 이에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5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 4사는 올해 2분기 호실적을 기록했다. SK이노베이션의 2분기 영업이익은 2조3292억원을 달성했다. S-Oil(에쓰오일)과 현대오일뱅크도 각각 1조7220억원, 1조3703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모두 역대 최대 분기 실적으로, 아직 2분기 실적을 발표하지 않은 GS칼텍스도 1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호실적의 원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 유가의 고공행진이 지속됐고, 정제마진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번 분기 최대 실적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유가 상승에 따른 석유사업 재고관련 이익 증가, 설비운영 최적화 등이 손익 개선에 도움이 됐다"며 "무엇보다 올해 들어 석유제품 수출물량이 크게 증가한 것이 실적개선의 주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횡재세를 도입해 정유사의 초과 이익을 환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횡재세란 뜻밖의 초과 이윤에 매기는 세금으로, 1997년 영국 공기업들이 민영화 과정에서 얻은 시세 차익을 환수하는 차원에서 처음 도입됐다.

민주당 민생우선실천단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고유가 국민고통 분담을 위한 정유업계 간담회'를 갖고 정유 4사 임직원들을 만나 고통분담을 촉구했다. ​

이번 간담회에서 김성환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석유사업법 18조에 '정유업계에 부과금을 걷을 수 있다'는 규정이 마련돼 있다"며 기금 출연을 언급하기도 했다. 실제 정유업계는 3조원대 영업이익을 올린 지난 2008년 1000억원대의 특별기금을 조성하기도 했다.

또한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지난 2일 정유사의 초과 이득에 대해 50%의 법인세를 부과하는 '한국판 횡재세법'(법인세법 개정안) 발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해외에서는 일부 국가들이 이미 횡재세를 부과했거나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는 셸과 BP 등 자국 석유업체에 5억파운드(약 7900억원)에 달하는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정부는 이를 고물가에 생활고를 겪는 저소득 계층을 지원하는 데 쓸 예정이다.

헝가리 정부는 에너지 기업 몰(MOL)에 대한 법인세를 25%에서 40%로 올릴 계획이다. 스페인 정부는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고 세수 증가분으로 국영 철도 무임승차권 발급하기로 했다. ​

미국 의회는 이익률 10%가 넘는 석유 기업에 21%의 세금을 추가로 물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국내 정유업계는 횡재세가 부과된 해외의 기업들과 사업구조가 다르다며 난감하다는 입장을 고수 중이다.

정유산업은 통상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으로 구분된다. 업스트림은 유전을 채굴해서 원유와 가스를 생산단계를 말하고, 다운스트림은 원유를 정제해서 소비자에게 판매까지 하는 단계를 일컫는다. ​​​

영국의 BP, 셸 등은 업스트림으로 수익을 내기 때문에 마진율이 높지만, 국내 정유업계는 다운스트림으로 수익을 내기 때문에 해외에서 원유를 구입해 가공한 뒤 판매를 남는 마진으로 이익을 내는 구조다. 실제 국내 정유업계의 영업이익률은 통상 5% 정도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영국 같은 경우 횡재세라기보다는 원유를 시추할 때 부과하는 법인세를 확대한 것" 이라며 "이 또한 생산 여력을 확대하는데 재투자하면 세금을 환급해주는 조건으로 영국 정부가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횡재세가 조세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업계는 2020년 저유가 영향으로 5조원의 적자를 냈다. 이번 실적 호조로 적자를 만회하고 에너지 전환이나 탄소중립 등 신사업을 위한 재원으로 사용할 계획이다"며 "정유업계가 적자를 낼 당시에는 업계에 아무런 도움이 없었는데 실적이 개선되니 횡재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어서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횡재세가 정유업계만 적용이 되는 건지, 재원을 어떻게 사용할 건지 등 없던 제도를 새로 만드는 부분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시적 고유가로 인한 횡재세 부과 여부만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기금 출연과 관련해서는 "2008년 당시 올해와 비슷하게 상반기 실적이 좋아서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금을 조성하고 추진했으나 하반기에 바로 적자가 났다"며 "현재 휘발유 등 재고량이 증가하면서 수요가 감소하는 상황이고, 정제마진도 떨어져서 하반기 실적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라 선뜻 결정 내리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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