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K이노베이션, CEO 복수후보제 도입한다
그룹 수뇌부가 CEO 내정하던 관행 탈피...이사회서 투표로 결정
이사회, CEO 평가·보상·승계 등에 대한 의사결정권까지 보유
최태원 SK 회장의 결단..SK 계열사 및 재계 전체로 확대될지 주목
김선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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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5 18:08 | 최종 수정 2021.07.06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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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CEO는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인센티브를 지닌다. 이를 통칭해 대리인 문제라 한다. 이에 미국을 중심으로 20세기 중후반 등장한 방법이 이사회 중심의 경영이다. 주주들이 이사를 선정하고 이사회가 주주들을 대신해 경영진을 감독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사회 도입이 20년 넘었지만 여전히 거수기에 그친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ESG 경영이 도입되면서 이사회 중심의 경영 체제가 강화되고 있으나 결과를 예단하긴 어렵다. <주주경제신문>이 주요 기업 이사회의 독립성, 전문성, 활동성을 평가한다.
#매년 12월이면 각 그룹 계열사의 대표이사(CEO)가 발표된다. 누군가는 연임을 하고 어떤 기업에는 새 얼굴이 등장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상법에 따르면 대표이사는 이사회에서 선임하도록 돼 있다. 또한 이사회 멤버는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 하지만 주총을 열기 석 달 전에 그룹 수뇌부가 계열사 대표이사를 공개하는 것이 재계 관행이었다.
상법을 거스르는 이러한 관행을 바꾸기 위해 SK이노베이션이 칼을 빼 들었다. 5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의 핵심 계열사 중 하나인 SK이노베이션이 CEO 선임 절차를 전면 쇄신한다.
종래에는 여느 그룹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그룹 수뇌부가 지명하는 대표이사 내정자가 이사회에 통보되면 이사회가 형식적인 투표를 거쳐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때문에 그룹 총수인 최태원 SK 회장의 의중이 계열사 전체 CEO 인사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계열사 이사회가 '거수기' 취급을 받아온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관행에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지난 1일 SK이노베이션이 발표한 이사회 중심 경영 강화를 위한 거버넌스(Governance) 개선안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이사회 산하의 인사위원회를 인사보상평가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고 권한을 강화한다.
가장 큰 변화는 단일 후보가 아닌 복수 후보를 인사위원회가 이사회에 추천한다는 점이다.
현재도 SK이노베이션 인사위원회는 대표이사 선임에 대해 검토하도록 돼 있다.
다만, 그룹에서 이미 대표이사 후보를 내정해 발표했기 때문에 형식적인 검토에 그쳤다. 이사회에서도 찬반 여부 투표만 진행됐다.
하지만 현 김준 대표이사의 임기가 만료되는 2023년 인사부터는 복수의 대표이사 후보를 인사보상평가위원회가 이사회에 추천한다. 이사회 투표에서 높은 득표를 얻는 이사가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다.
또한 이사회는 단순히 후보 중에서 마음에 드는 대표이사에게 투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전에 대표이사 평가 정책을 수립, 평가를 확정한다. CEO 재선임 여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는 셈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앞으로는 CEO를 복수 후보로 추천해 이사회가 선임하며, 또한 선임 뿐 아니라 연도별 평가도 하고 후보군 발굴 육성 등 승계까지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변화로 연말 연초 그룹 인사와 주총, 이사회 의결로 이어지던 재계 풍경이 달라질지 주목된다.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 CEO를 이사회가 열리기도 전에 그룹에서 발표하는 것은 상법에 어긋나는 우리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이었다"며 "SK이노베이션의 이번 쇄신이 SK그룹 전반에 확대될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현재 SK이노베이션 인사위원회는 하윤경 김정관 2명의 사외이사와 유정준 사내이사로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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